“Sometimes the simplest things are the most profound. My job is to bring out in people & what they wouldn’t dare do themselves“
그레고리 비일(G. K. Beale)의 요한계시록
해석의 기본 입장: 편지, 묵시, 그리고 예언비일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 전통적으로 제시되어 온 과거주의, 교회-역사주의, 미래주의, 이상주의를 융합한 수정된 이상주의(상징주의) 해석을 채택한다. 비일에게 해석의 출발점은...
2025 뉴질랜드 유스코스타
‘집에 가고 싶다’던 학생들 예배 속에서 마음이 열려
2025년 12월 16일부터 19일까지 CYC Ngaruawahia에서 ‘내가 선 곳, 거룩한 땅(Here I Stand, Holy Ground)’이라는 주제로 뉴질랜드...
“좋아하는 뮤지컬을 하며 살아가니 어때요?”
작년 중반,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글쎄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좋아한다’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뮤지컬 한 편에 들어가는 수많은 시간과 재정,...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새벽에 귓가를 울리는 소리새해 첫날 새벽 어렴풋이 귓가에 들리는 아우성 소리에 잠을 깼다. 무슨 소린가 싶어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떠 방안을 살폈지만...
이어령,『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새해 첫 요리 ‘함박스테이크’
새해 첫 요리로 소개할 메뉴는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함박스테이크” 입니다.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칠 때가 있습니다. 매일 차리는...
mum 맘! 이라고 부르지 말라!
Mum과 Lucy, 시어머니!갓 시집와서 처음으로 시댁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뭐라고 시어머니를 부르나? 어떤 호칭이 적당할까? 한국 같으면 어머님! 어머니! 라고 불러야 될 텐데…. mother!...
장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우 to the 영 to the 우(우투더 영 투더 우)동 to the 그 to the 라미(동 투더 그 투더 라미)”
몇 해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세계·한국·뉴질랜드 절제운동의 역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 9:25)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이유
아내의 귀국,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아내가 오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혼자 지내며 흐트러진 집안 곳곳의 흔적을 지우느라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휴가까지 내고 밀린 청소를...
월드사랑의선물나눔운동, 2025 성탄선물 결산
뉴질랜드 내의 다민족 가정, 동남아(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 태국, 베트남, 필리핀)와 남태평양(피지,바누와투, 통가)의 가정, 대한민국의 다민족가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정이 기도하면서 바라고 소원하며 12월의 사랑과...
3040 심폐 소생
뉴질랜드 키위교회에서 80대 어르신들이 교회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종종 본다. 반면, 지금 한인교회들의 상황은 감사하게도 그보다 낫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키위교회와...
“Anyone who has died has been freed from sin”
로마서 6장 6-7절 말씀“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선교사로서의 서원과 부르심
해외에서 36년 이상 체류하면서 전도에 열심을 낸 이유가 있다. 1976년에 강원도 횡성에서 군의관 3년차 근무 중에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서원하게 된 이유는...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목수들의 지원 기다려
왜 바누아투 선교인가?1895년부터 약 15년간 바누아투의 산토 섬의 로쿠쿠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스코틀랜드 출신 James Noble Mackenzie 선교사는 1908년 부인이 사망하자 본국으로 귀국했으나, 1910년 호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