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창고의 빗장을 풀고 싶다

첫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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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6년에 뉴질랜드로 딸아이와 단둘이 교육이민을 왔다. 함께 이민 신청을 해 놓고 도저히 자신의 일과 직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을 한국에 두고 10년간 기러기부부로 살게 되었다.

첫 1년은 마이랑기베이에서 현지인 홈스테이를 하면서 생활영어와 문화를 익혔다. 뉴질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터득하게 된 후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준 그곳으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도시 웰링턴으로 떠났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낯선 곳에서 정착하며 살아갈 용기와 도전정신,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인큐베이터’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웰링턴에서 5년동안 지내면서 컬리지를 졸업한 딸이 오클랜드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서 다시 고향같은 오클랜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다시 우정을 쌓으며 한인들이 많은 이곳에서 뉴질랜드 사회와 한인사회의 가교로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대학을 마친 딸은 사귀던 키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어 웰링턴에 가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 10년 후에 만날 것을 기약한 남편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싱가포르 회사에 취직이 되는 바람에 나는 그간의 뉴질랜드의 기러기생활을 청산하고 2007년에 싱가포르에서 남편과 함께 살게 되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였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
나는 뉴질랜드에서 10년간 틈틈히 써 온 글들을 모아서 ‘해외에서 보물찾기’라는 글로벌 교육 에세이를 2013년에 종이책과 2014년에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뉴질랜드에서 배운 소중한 가치들과 한국인이 가진 장점과 강점을 가지고 어떻게 해외에서 당당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그간 경험했던 많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이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국을 떠난 아이들이 어느덧 부모가 되었다. 1.5세 자녀가 이민 1세 부모세대와 겪는 갈등 못지 않게 1.5세 부모가 2세 자녀와 겪는 갈등도 유형만 다를 뿐 결코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가정에서 한국 부모를 보고 자라난 1.5세들이 배운 좋은 점도 있지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 중에서 놓친것도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한국인의 약점을 극복하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글로벌 리더로 자신의 길을 가야할 지에 대한 여러가지 경험들을 중심으로 진솔하게 풀어내고 싶다.

‘한국인의 정체성과 글로벌 시민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지구마을 어디에서든지 소중한 가치를 삶으로 구현하며 후회없이 살아가려면 과연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나의 이민생활과 다양한 경험들은 이제 차세대에게 나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내어 주기 위해 이제는 그‘보물창고’의 빗장을 풀어 놓을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한국과 뉴질랜드라는 두 나라만을 비교한다면 사실 차이가 나는 부분들을 단지‘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라고만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으로는 동양이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다민족들이 모여 살아가는 아시아의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느끼는 문화 체험들은 그간 10년간 살았던 뉴질랜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내 나라 한국과 한국인의 성향과 의식에 대한 부분들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도 간간이 이곳에 취업이 되어 나온 뉴질랜드 한인 1.5세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장소에서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우연히 치과에 갔다가 오타고 치대를 나와서 싱가포르의 치과에서 일하는 뉴질랜드의 한인 1.5세들을 만났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화가, 의사, 다국적기업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의 뉴질랜드 1.5세들을 만나게 되면, 이민 1세대로 낯선 땅에 가서 자녀 교육에 헌신한 한인 부모들의 피나는 노력과 정성이 가슴으로 느껴져 마음이 찡하다.

실력으로는 어디가도 뒤지지 않을 1.5세들, 그러나 그들에게 아직도 국제 경쟁력에 있어서 어딘가 좀 미흡한 부분이 있다. 한국 가정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모세대들은 처음 이민 와서 사회시스템에 적응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극복하느라 나름대로 애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자녀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줄 수 없었던 부분이 많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면 2세를 키우는 1.5세 부모가 1세 부모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1세 부모들보다 자녀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어쩜 자신의 부모보다 더 소통이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젊은 한인들이 가진 잠재력들을 한껏 이끌어 내고 싶어
가치관의 확립과 교육을 위한 소통의 방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지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경험하면서 오랜시간 동안 내면에 학습이 되어 쌓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사람들이 타 문화에 미숙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리적인 여건과 더불어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윗세대들에게서 자라난 그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교육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에게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세계를 향해서 뛰는 글로벌 한국인들이 더욱 많아질 미래에 어떻게 그들이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며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당하게 활약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나의 뉴질랜드 생활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의 40대에 경험했던 뉴질랜드에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아시아에 대한 꿈을 꾸며 모여드는 싱가포르에서 이제 성년이 된 차세대 친구들에게 들려줄 얘기가 있다.

이 지면을 통해서 올 1년 동안 12회에 걸쳐서 내가 얻었던 것들, 후회하는 것들, 자랑스럽게 느끼는 것들을 나누며,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차세대들과 함께 다시 한번 미래를 꿈꾸고 싶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젊은 한인들이 가진 잠재력들을 한껏 이끌어 내고 싶다. 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소중한 덕목과 가치관은 다음 세대로 넘겨주어야 할 정신적인 유산이다.

어느 나라에 살던지 어릴 때부터 자녀들이 모국의 문화와 현지 문화를 배우며 문화 유산들을 균형 있게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간의 경험 속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뽑아서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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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미
10년동안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교육이민의 경험을 담아낸‘해외에서 보물찾기’저자로 글로벌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 에세이를 출간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싱가포르에서 아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한류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