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세기총) 주최 제55차 한반도 자유, 평화, 통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기도회 및 뉴질랜드 참전용사 한반도 평화 메달 수여식’이 있었다. 귀한 행사를 마치고 난 지금, 마음에 밀려오는 이 감격을 부족한 나의 글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2025년 7월의 어느 날, 크리스천라이프 발행인 이승현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2025년 10월! 여러 나라에서 많은 목사님과 선교사님이 오클랜드에 처음 방문하십니다. 기도회 행사 중 평화메달 수여식을 하는데 참전용사와 그분들의 가족을 초청하여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함께 동역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국전쟁 당시 뉴질랜드는 4,700여 명의 군인을 한국에 파병하였고, 그들 중 100여 명이 전사 또는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그분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의미에서 평화 메달 수여식을 하는 매우 뜻깊은 행사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9월에 딸아이와 함께 떠날 해외 일정의 항공권을 이미 2월에 예매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목사님을 만날 무렵 나는 오른쪽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났다. 그리고 한달 후, 한국 본부의 사무총장 신광수목사님께서 사전답사를 위해 뉴질랜드에 방문하셨고, 이목사님과 함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리 근육 파열로 인하여 운전도 못 한 채, 목발과 반부츠를 착용한 상이군인 같은 모습이었다. 신목사님은 나의 상태를 보고도 조심스럽게 협조를 요청하셨다.
“한국에 가셔도 중간에 다시 뉴질랜드로 오셔서 3일 만이라도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이 다리로 공항을 어떻게 걸어 다니며, 지하철 계단을 어떻게 오르내리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강한 사람도, 철인도 아닙니다.”
고민 끝에 정중히 거절의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의 마음 한쪽에서 무언가 강하게 밀려왔다. 밥을 두 끼나 먹지 못한 상태인데도 전혀 밥 생각나지 않을 만큼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하나님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나에게 응답해 주었다.“어떤 일을 결정할 때 양손에 떡을 다 쥘 수는 없다. 둘 중에서 하나를 버려라!”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여호수아 24장 15절)
이 일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리고, 발행했던 항공 티켓을 모두 취소하고 일을 맡기로 결단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나의 사명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 방문하기,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들에게 연락하기, 이 행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과 공식 공문 발송하기, 행사 전날까지 꼭 참석 요청하기, 관련 기관과 협조하기, 기타 세부 준비 등등.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90세가 넘은 고령이기에 혼자로서의 외출이 어려워서 모시는 것도 쉽지 않았다. 행사 당일 몇 분이나 오실까? 너무 적은 인원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행사 전날까지 연락을 취하였다.
그중 한 분 말씀이 “정부 기관에서 VIP 초청 행사가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두 번 외출하기 힘들어서 정부 기관 행사에 참석을 취소하였고, 경숙 윌슨이 초청한 이 행사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힘이 돋는 말씀에 너무나 기뻤다.
참석 확정 마지막 날. 우연히 잘못 걸린 전화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인데 상대편의 음성이 나이 드신 한국 남성분이었다.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데 “군대 갔다 왔습니까? 6.25 전쟁 참전했습니까? 혹시 군인들 입는 군복 있습니까?” 나의 따발총 같은 질문에 그분은 “YES”라고 답해 주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 분까지 마지막으로 참전용사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드디어 2025년 10월 19일, 행사 날이 되었다. 모두 열네분의 성함을 올렸고 세기총 본부에서 메달과 감사장, 그리고 선물을 준비해 왔다. UNPK 이성훈 부회장과 함께 일찍 서둘러 행사 장소인 교회에 갔다. 교회에 들어서니 청년들의 찬양과 워쉽댄스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행사 시간이 가까와 질수록 지팡이에 의지한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이 한두 분씩 들어왔다.
세기총 목사님들은 한 분 한 분 정중히 그분들을 맞이하셨다. 처음 만나 인사 나누는 순간이었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목사님들은 순서대로 사회, 안내, 인사, 기도, 설교 말씀에 이어 메달 수여식까지 물 흐르듯 멋지게 진행되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께서 참전용사 한 분 한 분 정성스럽게 메달을 목에 걸어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해주었다.
Daniel HERLIHY 참전용사가 답례 인사를 하기 위해 단상 앞으로 나왔다. 말씀 중에 쓰러지실까 봐 수염이 무성한 그분의 조카가 뒤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꼬깃꼬깃, 손으로 빽빽하게 써 오신 말씀이 꽤 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셨을까? 어쩌면 이날 이 시간이 강단 위에서 말씀하는 그분의 마지막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나만 느끼는 것일까?
“맨 중앙에 태극기를 올려다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이 메달은 저와 함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청춘을 바쳤던 뉴질랜드 전우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명예입니다.” 그분의 건강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나는 알고 있었기에 자리로 돌아가실 때까지 조마조마 했다. 메달 수여식이 끝나고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세기총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그분들께 천천히 큰 절을 올려 드렸다. 감동의 전율이 느껴졌다. 행사는 평온하게, 그러나 깊고 깊은 울림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행사가 끝난 후 시간이 많이 지난 얼마 전에 James JONES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일이 떠 올랐다. 흰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시면서 “경숙 윌슨, 부산 유엔묘지에 건립한다는 뉴질랜드 벤치 빨리 서둘러라. 나는 지금도 걸핏하면 응급실에 실려 간다. 내가 하늘나라 가는 날! 내가 만들어 놓은 관 위에… 맨 중앙에 태극기를 올려다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놓아주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