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세월이 벌려 논 마음의 간극

여름 저녁의 상념
지난 한 주 내내 제법 더운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남쪽의 이 작은 섬나라에 여름이 그냥 가고 가을이 오나 했더니 늦더위가 나름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우리 한국의 더위와는 달라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해지는 이곳 뉴질랜드의 더위이기에 제 경우에는 늦여름 더운 날씨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날들의 시원한 저녁나절과 점점 더 투명해지는 듯한 하늘 빛깔을 즐기는 편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도 그런 한때였습니다. 내 방 창문 위론 하늘이 더할 수 없이 푸르렀고 오후의 늦은 햇살은 한껏 게으른 자세로 너울거리며 창문을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FM 라디오에서는 누구의 곡인지 모르는 피아노 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벼운 발자국 소리로 튀어나왔습니다.

행복한 마음이 들면 습관처럼 뒤를 돌아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잊었던 버릇이었지만 이날 저녁엔 그 버릇이 또 도졌었나 봅니다. 어느덧 지나간 과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지만 구태여 거기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참 많은 여름의 나날들이 지나간 나의 삶의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살며시 왔다가 또 그렇게 살며시 지나간 많은 나날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의 어떤 날들은 아직도 여름날 잠자리 날개의 작은 떨림 마냥 마음 한구석에서 파르르거리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또 어떤 날들은 지우고 싶어도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옷자락 위의 음식 자국처럼 냄새마저 생생하게 기억의 콧날을 타고 다가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여름을 노래한 두 편의 시(詩)
이게 뭐지? 굳이 들릴 곳이 없어도 만날 사람이 없어도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가기만 해도 정겨운 옛 거리를 거닐 듯 기억 속의 지난 여름날들의 오래된 책갈피를 뒤적이다가 문득 만난 두 편의 작은 시(詩)가 있었습니다.

참 오래전에 적어 놓은 것들이었는데 하나는 스무 살을 갓 넘겼던 대학 3학년 때 써놓은 시였고, 또 하나는 버티다 버티다 할 수 없이 넘어버린 사십 고개를 막 넘긴 중년의 사내가 써놓은 시였습니다. 두 편 다 여름을 주제로 써놓은 시였는데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그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기에 나는 그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하지 않는다 해도 변하는 것이 사람이고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스스로 우겨도 써놓은 글을 보면 변한 자기의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만 석연해졌습니다.

이십 대의 풋풋한 시심(詩心)은 어디로 가고 풍자만 남은 어쭙잖은 사십 대라니? 이십 년 세월의 간극은 그렇게도 큰 것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두 번째 시를 썼던 그 사십 대로부터 또다시 이십 년도 훨씬 더 되는 세월이 훌쩍 지나간 지금의 나를 생각하니 그만 끔찍해졌습니다.

어느덧 나는 과거라는 회상의 늪에서 빠져나와 현재라는 시간의 기슭에 나와 있었습니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서늘한 바람이 창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지금도 시를 쓸 수 있을까? 한줄기의 바람이 방 안을 돌고 나갔을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쓸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과연 내게 시심(詩心)이라는 것이 남아있기는 할까? 연속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스스로 답할 자신이 없기에 아니면 정답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에 질문에 대한 답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서 구하고 싶어 여기 두 편의 졸시(拙詩)를 소개합니다. 이십 년의 사이를 두고 쓰인 두 편의 시를 읽어 보시고 어느 분이 저에게 솔직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를 썼을 때가 막 사십 고개를 넘었을 때이지만 지금은 그때로부터도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과연 이 나이에도 시를 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어느 분이 제게 답을 주시기 바라며 두 편의 시를 내놓습니다.

여름 풍경(風景) 1 – 찻집 풍경
그 여름 학교 앞 찻집은 내내 북적거렸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담배 연기 피어오르고
옹기종기 여학생도 남학생도
시끌벅적 마음껏 입을 열던
학교 앞 그 찻집에선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커피 한 잔만 시켜 놓으면 되었다.

밖은 여름이었고
아스팔트 찻길 위엔 끈적거리는 더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복병처럼 엎드려 있었지만
학교 앞 그 찻집에서
우리들의 여름은 마냥 부푸는 풍선이었다.
양 볼이 터져라 바람을 넣어서
우린 제각기의 풍선을 불었다.

그 여름 학교 앞 찻집
시켜 놓은 커피는 식어갔지만
우리들 가슴은 내내 여름이었고
우리 중 아무도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_<1969 여름 찻집에서>

풍선을 불며 불며 꿈을 부풀리던 청년은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에 나왔고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세월 동안 여름은 변함없이 계속 왔고 중년이 된 청년은 20년이 흐른 여름 어느 날에 또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

여름 풍경(風景) 2 – 식당 풍경
칠월의 막국수 집은 부산하다.

삼삼오오
찬물 한잔 받아놓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막국수를 기다리는 사람들

삼십 도를 넘는 무더위가
이 사람 저 사람의 목덜미를 기어다녔고
찌그러진 선풍기 한 대
혼자 돌다 지친 듯
제 몫의 더위를 이리저리 밀어내고 있었다.

빨리 주세요, 아줌마
사무원 차림의 처녀 하나가 목 돌려 주방 쪽에 외칠 때
쭈그려 앉은 그녀의 스커트 자락이 잠시 벌어졌고
순간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
못 본 듯 훔쳐본 사내들은 각기 침을 삼켰다.

빨리 줘요, 아줌마
그들 중 몇이 이번엔 같이 소리쳤다.
_<1989 여름 식당에서>

영혼이 손뼉 치는 노년
두 편의 시를 썼던 사람은 이제는 노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젊은 날의 감성도, 중년의 성숙도 놓아버리고만 나이이지만 영혼만은 꼭 붙잡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그의 명시(名詩)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이야기했듯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하지 않는 한 노인은 지팡이 위에 걸쳐진 남루한 옷’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육신의 힘이 빠지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감성도 무디어져도 ‘영혼이 소리 높여 노래 부르며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려 할 때’ 노년의 삶은 지난날의 삶보다도 훨씬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꽤나 오랫동안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나 봅니다. 창문을 넘나들던 오후의 햇살은 어느덧 모두 사라지고 서늘한 저녁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아직도 손에 잡고 있는 두 편의 시를 보며 혼잣말로 속삭였습니다. ‘시심(詩心)이 남아 있던 아니던 중요한 것은 쓰려는 마음이겠지. 시심보다 중요한 영혼의 손뼉에 맞춰 노래하는 마음으로 계속 쓰자. 비잔티움까지는 못 가더라도 항해는 해봐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