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 세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작년 미국 방문 때 일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 새도 없이 어느 카페로 인도되었다. 개인 사정으로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카페부터 시작된 상담은 그날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계속됐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대부분 어떤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완쾌는 가능할까?‘, ’언젠가 나아지기는 하는 것인가?‘, ’언제까지 힘들어야 하는 걸까?‘,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사실 교회는 꽤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이 곧바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십자가와 부활, 즉 예수님이 답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결단과 과정 곧, 참 사랑을 알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이 참 사랑으로 먼저 그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생긴다. 동시에, 교회와 이 은혜를 아는 이들의 어깨가 무거워짐을 실감한다.

2014년 무렵부터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대학과 캠퍼스 분위기가 국제적으로 갑작스럽고 뚜렷하게 바뀌었다. Z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불안과 우울 등을 포함한 심리적 장애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다. 저명한 사회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불안세대‘에서 인간의 행동 양식을 진화사적 관점과 환경 요인을 바탕으로 두 가지 체계로 설명한다. 이는 발견 모드(Discover mode)와 방어 모드(Defend mode)이다.

“발견 모드는 새로운 상황과 사람, 개념을 기회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 행복하고 사회성도 높으며, 새로운 경험에 더 열린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방어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기회보다는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방어적이고 불안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조심성은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성장에는 방해가 된다.”(불안세대 p.110)

발견 모드로 살아가던 밀레니얼 세대와는 달리,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Z세대는 방어 모드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 세대가 대학과 캠퍼스의 주를 이루면서 이런 변화를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사례 중 하나가 최근 틱톡에서 화제가 된 ‘무표정 응시(Gen Z Stare)’이다. ‘젠지 스테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다음 세대 특유의 감정 없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상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손님을 응대하거나, 대화 중 대답을 요구받을 때 자주 나타나며, 과연 이것이 무례함인지, 혹은 세대적 특성인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다음 세대는 이에 대해 사회적 방어기제 혹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현실 사회에서보다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에 더 익숙한 이들은, 대면하여 인사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통한 간접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 간 소통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필자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대부분 교사이거나 교육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과 다음 세대를 주제로 회의하다 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필요를 파악해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 라고 고민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정신적으로 약한 다음 세대가 문제가 아닌 일들을 너무 크게 봐서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으니,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지나치게 관심을 주기보다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며, 함께 죽고 함께 살기 위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를 이해하고 인도하는 것은, 선교 못지않게 중요한 사역이자, 동시에 어려운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가 선교사만의 몫이 아니듯, 다음 세대에게 손을 내밀고 끌어 안는 일 또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필자가 다음 세대 사역에 뛰어든 이유도, 어떤 개인적인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이다.

이미 다양한 연구와 분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시대는 우리의 이해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장에서 다음 세대와 소통하며 깨달은 점은, 이들의 표현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대답게, 지식이 많고 능력도 뛰어나 성숙한 어른 같지만, 실제로는 어쩌면 사회적 성숙이 더딜 수 있고, 그로 인해 생각과 다르게 표현이 서툴거나, 완벽주의로 인해 게으른 것처럼 보이거나, 방어 모드로 인해 도전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자.

다음 세대는 진로는 어떻게 선택을 하는건지,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돈을 왜 벌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인격이 왜 중요한지, 이성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외로움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이런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부터, 다음 세대를 위한 적절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가르침은 결국 자기애와 이기심에 기초한 선택으로 흐르기 쉽다.

이처럼 시급한 교육이 부재한 가운데 성 정체성의 혼란, AI와의 연애 등 빠른 속도로 등장하는 사회적 변화들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만 도태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의해, 때로는 무비판적으로 동의하거나 심지어 세대적 이해 없이 말씀을 그대로 들이대어 무조건 ‘죄’로 단정해 버림으로 세대 간의 단절뿐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다음 세대는 병든 것이 아니라 심리적 장애에 쉽게 노출된 세대일 뿐이다.

이들에게 다가가기로 세대적 선교의 마음을 먹었다면, 이제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때이다. 성공학자 Darren Hardy는 “당신과 자리를 바꾸지 않는 사람의 조언은 절대 듣지 마라”고 말했다. 즉, 다음 세대에게 조언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들의 자리에 앉아 그들의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동안 설명해 왔던 사회적 단절로 인한 외로움, 미디어 중심의 사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다음 세대와 자리를 바꾸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 살아왔던 내 모습과 기준에 비추어서가 아닌, 상상과 추측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닌, 21세기에 태어나 수많은 정보 속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묻고 들어주며, 어떤 조언이 필요한지, 어떤 어른이 필요한지, 어떤 관계와 관심이 위로가 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수용할 용기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서 부딪히면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가장 쉬운 실천으로는 평소에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일 것이다. 계속해서 접속해 있어야 사회적으로 도태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늘 시선을 빼앗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폰을 보지 않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별히 다음 세대에게는 꽤 어려운 도전이다.

가정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스마트폰 없는 시간을 갖고, 산책이나 요리 같이하기(이때 미리 조리법을 인쇄해 두면 스마트폰의 다양한 의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는 함께 취미를 배우러 다니기 등 유대감을 형성하며 대화를 열어가는 것이 좋다.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고, 매주가 어렵다면 한 달에 두 번이라도 시도해 보면 좋겠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차차 나누도록 하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선교적 노력은 다음 세대를 설득하거나 고치거나 충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리에 들어가 앉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교회에 가면 다들 스마트폰을 잘 들여다 보지 않는다. 즐거운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한 순간 빼고는 대부분 핸드폰을 가까이 두지도 않는다. 그만큼 대화가 즐겁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문화는 아니다. 이를 위한 투자는 오래전부터 되어 왔다. 다음 세대를 파악하고, 그들의 자리에 앉아보며, 배우고 또 나누며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를 위해 애써왔다. 다음 세대가 앞서간 세대를 배울 만큼 성숙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이 세대를 넘어 가르치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살아있고, 어떻게 하면 그 진리가 우리 삶 속에 묻어나 함께 자라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도한다. 이 과정에서 다음 세대는 실질적인 질문들을 주저하지 않고 나누고, 가르침을 받고 싶은 부분들을 요구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삶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자리에 들어가 진리를 재해석하고, 세대 간의 어려움을 넘어서 진리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조금은 느릴 수 있지만 해답이 아닌 소망을 주는 세대적 선교 사명을 감당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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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지은
Open Chuch 담임. 우리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세대간의 갈등, 그로 인한 대화의 단절이나 오해로 고심하고 있는 독자에게 참 진리로 인해 건강한 세대의 다양성과 각 세대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따끈한 에피소드와 실천할 내용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