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짜리 볼일을 보고 왔는지 알아?”

승무원 인터뷰 중 인터뷰어가 물어봤다.


“승무원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정말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거나 그런 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이런 생각은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공항 갈 때까지의 그 마음이 너무 설레고 행복한데, 이 일이 직업인 사람들은 과연 설렐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제가 직접 한번 해 보려구요.”
“?”

인터뷰어는 충격을 받은 눈치였지만 금세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I never got that one before, but I like it”.

어떤 직업이든 지원하게 된 계기를 묻는 것은 대다수의 인터뷰 필수 질문이고 이 회사의 인터뷰어 역시 여러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대답을 들은 인터뷰어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솔직한 답변을 맘에 들어 했다. 대다수 지원자는 어렸을 적부터 승무원이 꿈이라는 전형적인 교과서 답변을 내놓았지만 대놓고 승무원에 대한 꿈이 없었다고 말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하였다.

1년 정도 비행하면서 느낀 점은 비행기는 설레는 마음만으로 타는 사람들만 있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여행을 가거나 여행에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승무원으로서는 아픈 가족을 만나거나 장례식을 참여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치료 받기 위해, 개인적인 가정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라에서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비행기에 타는 승객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사람을 대하기 위해 승무원으로서 트레이닝 받는 부분 중 하나는 가식적인 공감은 삼가라는 것이다. 긴 비행 중 잠을 이룰 수 없어 비행기 뒤 승무원이 있는 갤리 공간으로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이야기를 꺼낼 때가 많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승무원으로서 위로를 해주돼 선을 잘 지켜야 한다.

‘어떤 느낌일지 알아요’, ‘아, 저도 그런 경험 해봤어요’ 등 이런 말들은 오히려 상대방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묵묵히 들으면서, ‘정말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겪고 계시군요.’ 또는 ‘제가 비행 동안만이라도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꼭 말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위로를 건네야 한다.

정말 신기한 경험인 것 같다. 회계사로 근무하던 때에는 나의 클라이언트가 마음을 열고 자기의 개인사를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동료 회계사들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은 이상 그런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 이 클라이언트들은 짧게는 1년에서부터 길게는 수년 동안 회계사와 함께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나도 만약에 나의 클라이언트가 개인 가정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다소 불편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회계사 업무의 특성상 모든 일이 시간으로 계산이 되기 때문에 난 항상 나의 시간을 돈으로 말했다. 예를 들면, 내가 업무를 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면, ‘아, 나 그 일 끝내는 데 $N 썼어.’라고 동료들과 말하면 서로 이해를 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은 회사에서 협상 된 고정 청구 비용이 있고 우리는 그 비용을 맞춰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 그 금액을 넘으면 회사에서는 손해이고 그 금액 안에 일을 끝낸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압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화장실 갔다 오고 동료에게 ‘내가 방금 얼마짜리 볼일을 보고 왔는지 알아?’라면서 농담하곤 했다.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나의 연봉과 승진에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성과에 방해가 될 만한 부수적인 일들은 스트레스였고 많은 직원이 하기를 꺼렸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야유회나 봉사활동, 또는 네트워킹 이벤트를 홍보할 때 추가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성과를 맞추려 야근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많은 직원들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1년 전 회계사로 근무했을 때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바뀐 것이 없다. 하지만 내가 회계사로 상대하던 사람들이 당시 나에게 전화해서 이런저런 개인사를 풀기 시작하면 나는 분명,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개인 사정이 있으니 청구 비용을 깎아달라는 것인가?’, ‘지금 이 시간 1분 1초가 돈인데’ 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지만, 만약 똑같은 사람들이 클라이언트가 아닌 비행기 탑승객으로서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한다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비행 동안만큼은 이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모든 일들이 잘 풀리도록 진심으로 바랬을 것이다.


오히려 하루 만나고 끝날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서는 자기의 속마음을 진심으로 풀 수 있고, 나로서도 이번 비행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주고 부담 없이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이 승무원으로서 장점인 것 같다.

사람에게 정말 예민한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색안경을 끼고, 과연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식의 숨어있는 의미 해석을 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화 통화도 업무에 포함된다면, 청구될 때가 있고 클라이언트들도 이 부분을 알기 때문에 전화해서 돌려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청구서를 청구하면 일단 화부터 내고 시작하는 클라이언트들도 있었다. 험한 말도 많이 듣고 기 싸움도 많이 하고 인간이 돈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정말 웃긴 것은 돈이 많은 사장이든, 월급받고 일하는 나, 매니저들 또한 모두 똑같았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내가 직접적으로 돈과 관련해서 일을 하지 않다 보니 그 부분은 많이 줄어들고 확실히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때 승객들도 돌려 말할 필요가 없고,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해야 하는 것이 나는 너무 새롭고 편했다.

물론 승무원으로 일하면서도 말을 돌려 말하는 사람은 있다. 비행기에 타면서 자기는 의사이니 혹시라도 비행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너무 감사하게 말해주는 이코노미석 승객이 있었다. 의사들은 보통 예약할 때 타이틀은 Dr로 명시하지만 Mr로 돼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몇 분 뒤 의사는 그의 자리를 지나가는 나를 붙잡더니 자기가 나중에 도움이 되려면 기장과 가까이에 있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진짜 의도를 파악한 나는 매니저에게 가서 물어보겠다고 하고 매니저에게 가서 상황 설명을 한 뒤, 옆에 있던 동료 승무원들과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의사에게는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현재 이 자리에서 일을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하나님의 계획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인 만큼 나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 사람들을 편협하고 금전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으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삶을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승무원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아간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공감해 주는 것의 소중함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가는 과정에서의 보람이다. 지금의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이들과의 소통과 연결의 공간이며, 이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래에도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 가며, 항상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전 기사이십 년 세월이 벌려 논 마음의 간극
다음 기사NZ 대한기독교여자절제, 2024성경암송대회
김 승원
로토루아에서 자라 오클랜드 대학 회계학과 졸업, 빅4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 후 현재 콴타스항공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MZ 뉴질랜드 청년.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지요’를 실천 중이다. 말 그대로 천지 차이인 두 근무환경에서 일어난 다사다난한 근무일지와 그 안에서 신앙인과 세상사람이 공존하는 여느 MZ청년과 다름없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