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커피

오늘 커피가 유난히 쓰다. 주안이라는 친구 때문이다. 견과류 향과 다크 초콜릿 맛을 가진 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탈리안 로스트를 좋아하는 주안이를 생각나게 한다. 노숙자들을 만나는 사역을 수년간 함께 하며 거리에서 노래하고 기도가 필요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했다.

뉴질랜드에선 식사를 못 하는 노숙자는 거의 없다. 긴 기간 먹지 않았다면 선택적으로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마약을 하거나 술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 사람들을 떠나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간 이들. 정말 짙은 어둠, 그 어둠에 찌든 검정이 가득한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노숙자들을 위해 하나님을 노래하고 삶에 대해 노래하는 사역에서 주안이를 만났다. 신학과 상담학을 전공하고 음악도 참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커피를 좋아했다. 내가 사용하는 홈바리스타 커피기계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에게 플랫 화이트를 만드는 방법의 기초도 배웠다.

바리스타로 일할 정도로 꾸준히 실력을 쌓은 다재다능한 친구였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신경안정제를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지낼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고 바리스타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는 음악가의 꿈도 접어둔 상황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오랜 교회 생활 속에서 교인들과 하나님께 실망했다. 이후 알코올 중독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며 강력한 안정제를 꾸준히 먹지 않으면 공황장애와 PTSD로 극심한 불안함에 시달렸다. 서너 번의 자살 시도가 있어졌고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어떠한 직무와 사역보다 그를 집에서 나와 밝은 해를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고 좋은 신앙인들을 만나 그가 단 하루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명이었다.

“주안아 페인트 작업 함께 해보지 않을래? 네가 하겠다면 난 무조건 한다!”

오랜만에 큰 용기가 생겼다. 함께 커피와 음악만 했지 현장에서의 노동은 처음이었다. “저 때문에 하시는 건가요?”라는 그의 질문에 미소로 대충 답변하고 바로 일하겠다는 확인 연락을 관계자에게 보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국에 입원해 계신 친모를 위해 지원하기로 했다고.

힘들었지만 노동의 결과물을 보며 만족스러운 땀에 젖어 미소를 주고받았다. 주안이의 노동은 그저 단순한 페인트 작업이 아니었다. 짙은 어둠에서 삶으로 걸어 나오는 강력한 움직임이었고 빛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커다란 힘이었다.
그가 다시 시작하는 음악과 그가 다시 에스프레소 기계 앞에 서는 것은 그저 그런 취향의 반영이 아닌, 반드시 삶을 살아내겠다는 몸부림이었다.

그를 생각하며 오늘의 다크 로스트 커피를 들이킨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난 10년간 다 해보았는데 말입니다. 이제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주안이를 사로잡기만 한다면, 날마다 조금씩 변화될 수만 있다면, 주안이에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얼마나 감사할는지요. 지난 10여 년이 아닌 100년도 아쉽지 않겠습니다. 주님 역사해 주시겠습니까? 나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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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너무 행복해하는 커피 노마드이자 문화선교로 영혼을 만나는 선교사. 커피, 서핑과 음악을 통해 젊은 이와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며 밤낮이 없는 커피 테이블 호스트를 자청하여 청년 선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