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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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 대학원 동기선교사가 기도편지를 보내온다. 지원하여 가게 된 수도 콜롬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간지역의 현지인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참 좋다가도 아내가 심한 풍토병에 걸리면 마음이 쓰여 사역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복음을 전하고 교육하는 사역 및 소소한 행정과 밀린 업무에 집중하다 시간이 흘러 아내가 나으면 어디론가 가서 하루는 모든 것을 멈추고 쉬어야겠다고 한다.

또 다른 선교사님 부부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멀지 않은 지역, 격리되어 있는 나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간병도 하고 위로하며, 질병으로 깨어진 가족의 아이들과 과부들을 교회의 울타리로 인도하여 공동체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선교지의 일상 하나하나는 멀리 이국 땅 풍요로운 뉴질랜드에서는 분명 상상을 초월하는 삶의 현장들이다.

대형도시와 선교
동시에 하나의 그림이 더 있다.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도시, 특히 ‘대형도시’들이다. 이곳은 어떠한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그 행복의 기준은 기독교의 것과 세상의 것 사이에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세속화된 것에 만족하며 세상보다 더한, 혹은 세상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닌가? 아니면 세속화된 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이러한 이야기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구석구석 나타나 있다. 이 고전의 중심인물인 ‘크리스천’의 삶과 같이 뉴질랜드 한인 신앙인의 삶 또한 때론 환희에 차며, 때론 두려워하며, 또 혼란스러워하면서 하나하나의 관문을 넘어 참된 성도의 모습을 깨달아 가는 삶, 천성을 향하여 가는 참 순례자와 같은 삶을 추구한다.

로잔대회의 리더들은 존 번연의 고전에서와 같이 크리스천과 같은 신앙의 참 의미를 찾아 살고자 고민하는 현대의 순례자들이 21세기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가지고 이 ‘대형도시’들에 뛰어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들을 떠나서는 오늘의 선교를 논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제 도시선교, 먼저는 뉴질랜드 현지사회를 좀 더 들여다보려 한다.

21세기 도시선교와 교회
오클랜드, 뉴질랜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는 한인 이민자와 유학생을 동반한 가족들이 곳곳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는 다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곳이며 뉴질랜드의 타 지역들도 오클랜드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들만 보더라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 살다가 온 이들이 있기 때문에 매우 다문화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획일화된 키위, 자신의 문화만을 고집하는 마오리와 아시안은 이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의 예가 있다. 오클랜드 아본데일에 위치한 ‘헤브론 하우스’의 마이클 심킨스 목사는 그런 다민족의 유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타국 생활이 외로운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요리하고, 함께 복음을 나누며 예배 드리고,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돕고 서로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함을 통해 가르치고 배워간다. 다민족 유학생들이다 보니 문화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함으로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간다.

심킨스 목사는 이것을 ‘천국의 모습’이라고 표현한다. 천국은 참으로 다민족적일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에는 ‘내 것’ 혹은 ‘이기적인 관점’을 포기하고 하늘에 속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천국 소망을 늘 전하고 있다. 한번은 어떤 목사가 자신과의 대화 중에 ‘My Church……’라는 관용어구를 써서 그를 잠시 멈추게 하고 한참을 설명하며‘나의 교회란 없다, 오직 주님의 교회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한 해프닝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교회, 나의 민족, 나의 나라’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하면서 우리는 다 ‘천국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가’하며 비장한 이야기들을 커피와 함께 긴 시간 풀어 놓았다.

한마디로 그런 획일화된 시각으로는 천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문화, 다민족적인 성향을 타고 급진적으로 바뀌고 있는 현대도시문화에 접근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적으로 문화적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모두 존재하여 어떠한 형태의 선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심킨스 목사는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교회는 오늘 도시선교의 어려움마저 겪고 있다. 지난 십 수년간 미국의 선교사들이 대도시가 있는 중동과 이슬람권 나라들에서 추방당하고 있다. 또한 서구유럽의 교회, 기독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회관점에 따라 조사한 결과 도시의 대다수는 다음의 세가지를 떠올린다고 했다.

1. 안티 게이 2. 정죄 3. 회칠한 무리가 1~3위에 있으며 15위까지 모두 부정적인 반응들이 전부이다. 그 중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물론 염세적인 사람들만 만나서 바르게 통계를 내릴 수 없으나 적어도 이 통계자료에서는 비 신자들을 중심으로 조사한 내역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 중 어느 것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도시선교가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것을 돌파하여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을까 지혜의 하나님께 간구하여 본다.

도시선교의 선교학적 관점
여기에는 선교학적 관점과 문화적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 지난 달 28일, 로잔대회 대표인 마이클 오와 이 시대 대표 변증가이며 목사인 Timothy Keller와의 웨비나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이 도시선교의 중요성을 논하기 위해서‘The Future of Global Cities.’라는 주제로 소통의 장을 연 것이다. 세계화 도시의 미래는 선교의 중요한 연결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3세기 이전의 우리와 현재를 돌아볼 때 도시화가 되어 많은 이들은 삶의 터전을 도시로 옮겨오고 있는 실정이다.

300년 전에는 30%정도 밖에 되지 않던 도시화 인구가 지금에는 50%를 훨씬 넘었고 계속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산간지역과 농어촌 지역의 선교뿐 아니라 도시의 전문적인 영역에도 사람이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세속화의 물결은 거센 쓰나미가 되어서 교회와 우리 사회를 강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화된 도시선교에 교회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고 현대선교학자들은 단언한다. 현대선교는 50%이상이 도시선교에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타지역 선교도 함께 균형을 이뤄가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의 크리스천들이 영적으로 균형 있는 삶을 이루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를 선교적으로 담당하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이 도시 외의 타 지역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이어져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학교와 교회 및 선교단체들이 각 국가와 대도시의 일원으로 들어서서 양육되어지고 또 그렇게 훈련된 도시의 크리스천들은 타 지역으로 들어가 그들을 지원하고 돕는 선교가 이뤄져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선교학적 관점과 문화적 이해는 곧 ‘사랑’에서 시작된다. 이 선교적 사랑에 대해서 다음 이야기에 나누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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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운
레이드로칼리지와 감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세인트폴 교회에서 지원사역하며, 연재하는 상반기 동안에는 세계의 다음세대 리더 만나 선교와 교회에 대한 주제를 나누고, 하반기에는 한인 차세대 리더 만나 한인사회와 다민족 사역 동기와 환경 그리고 어려움과 열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과 진솔하게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