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기 전 외양간 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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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뜻으로, 한국의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실제로 의료계의 세계적인 추세는 병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에서 “어떻게 예방하느냐”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치료가 잘되더라도 해당 질병으로 인해 생긴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렵고, 때로는 치료가 가능하지 않거나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어떻게 하면 정신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우울증 예방’과 같은 문구로 찾아 보면 <십계명>방식으로 적혀 있는 예방 수칙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신체적 건강,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습관, 적절한 취미 생활, 생각의 유연성 등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이런 요소들의 중요성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들로 뒷받침 되어 있습니다.

영성 혹은 종교성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 돼
뿐만 아니라 영성(spirituality) 혹은 종교성(religiosity)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콜럼비아 대학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는 10년에 걸친 추적 조사 결과 개인적으로 종교 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은 것으로 집계 되었고, 특히 가족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걸릴 확률이 높았던 사람의 경우에 종교 생활을 통해 그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저명한 정신과 관련 학술 잡지 중 하나인 JAMA Psychiatry에 실린 2014년의 한 연구 보고서에서는 종교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경우 양쪽의 두정엽(parietal lobe), 후두엽(occipital lobe) 피질층(cortical layer), 그리고 오른쪽 근심전두엽 (right frontal mesial lobe)등이 더 두꺼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런 뇌 구조 변화와 우울증 간의 상관 관계가 존재함이 확인되었고, 콜럼비아 대학의 연구 결과와 동일하게 이런 사람들의 경우 우울증 발병 확률이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기도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불안증세와 반비례하는 연관성을 지닌다는 등의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즉, 정신 건강을 고려할 때 신체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건강을 따로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점, 바로 전인적인 건강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해 부담가져
이렇게 말씀드리니 부담도 됩니다. 필자 스스로도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께서도 바쁜 일상과 경제적 부담, 이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건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이런 일상의 스트레스와 더불어 더욱 큰 근심과 무기력함에 놓이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건강을 지켜야 할까요? 말하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정답’을 드리기 보다 정신과 의사로서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이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최근에 어떤 분들과 대화하다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몇 년이 지난 이 시점에 그 상처들을 다시 끄집어 낼 필요가 있나요?”

사실 답이 필요 없는 수사 의문문이었습니다. 지나간 일들은 이제 덮어 두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는 대답은 어려운 문제를 대할 때 흔히 접하게 되는 반응입니다.

하지만 망각과 치유는 분명 다릅니다. 덮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여전히 존재하는 사실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겉에서 보이지 않아도 안에서 곪고 있는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살을 째는 아픔이 있어야 하듯이 ‘긁어 부스럼’ 같아 보이는 일이 때로는 치유를 위해 대면해야 하는 불가분의 단계가 되기도 합니다. 왜 ‘예방’을 이야기 하다가 ‘치료’를 언급하는지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서적 건강 (emotional health)에 있어서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예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부모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곤고함’을 전혀 겪지 않고 사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다 어느 정도의 정서적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물론 이런 아픔이나 상처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정서적 건강을 위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예방 주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픔과 상처를 직시하고 이겨낼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resilience)이 되는 것이지 그런 아픔과 고통을 무시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병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아픔과 마음의 상처을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
그러하기에 정서적 아픔을 아는 것. 내 감정과 마음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것. 그 정서적 아픔과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쉼을 가지는 것이 바로 정신적 질환 (mental illness)을 예방하는 첫 걸음입니다. 내 몸이 아파서 마음이 힘들어질 때 몸도 마음도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다 죄인임을 인정할 때, 우리가 다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음을 고백할 때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강해서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고 강건하게 하실 것이며 힘이 되어 주실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아플 때 아파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십시오. 내가 약한 존재이며 상처입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곧 성탄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인도자 되시는 오직 한분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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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람
오클랜드 의대졸업,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노스쇼어 한인교회장로, 와이테마타지역 보건부 모성정신건강팀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의학적이며 또 성경적인 이해는 무엇일까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