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답답한 상황에서 ‘미치겠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친한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미쳐버리겠네’ 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가끔 “가서 ‘미’(음정) 치세요” 라는 ‘아재 개그’를 날리곤 합니다. 물론 많이 썰렁한 농담이지만‘미치도록’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는 이런 썰렁한 농담도 가끔은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같은 상투적 표현에서도 발견되듯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가 우리의 정신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의 문제에 다다르면 환경적 요인보다는 개인만의 문제로 치부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짧은 글 안에 다양하고 많은 정신 질환의 발병 원인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 가지 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바로 Diathesis-Stress Model 혹은 Vulnerability-Stress Model로 불리는 취약성-스트레스 모형입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의 영향
이 모형에 대해 매우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모든 개인은 각자 다른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취약성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질병이 발병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단순히 우울증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혹은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즉, 취약성이 있다고 해서) 우울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떤 상실이나 사회적 고립 혹은 트라우마 (스트레스)가 있으면 무조건 우울증을 겪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어릴 적 부모님과 사별하는 등의 정서적 요소나 가족력 같은 유전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매우 강인한 성격과 기질 그리고 신경계 건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외적 환경요인으로 인해 불안증이나 강박증이 발병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면 우리는 곧 스트레스가 취약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또 한 사람의 취약성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환경으로 더 자신을 노출하게 된다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두 요소가 지속적인 상호 작용 가운데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실은 후성유전학 (epigenetics)을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직과 가난이라는 스트레스가 지속적인 높은 코티솔 (Cortisol)의 분비를 통해 육체적인 취약성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또 불안정한 애착관계 같은 정서적 취약성이 반복되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 같은 외적인 스트레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건강이라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 환경과 외적 환경이 서로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떤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호 작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위험성-회복력 모형(Risk-Resilience Model)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바로 이것은 ‘왜 어떤 이들은 많은 스트레스나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도 어떤 이들은 정신적인 건강에 큰 어려움을 겪고, 또 다른 이들은 별 어려움을 겪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떤 것이 건강을 빨리 회복하거나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회복력 회복
회복력 (Resilience)를 키운다는 것은 각종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외적 환경 가운데서도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탄탄한 신체적 면역력이 우리가 여러 질병의 발병 요인이 될 수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노출 되었을 때 우리의 몸을 지켜내는 것과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신체적 면역력을 키우고 관리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통해 우리가 정신 건강에 있어서 효과적인 회복력을 키울 수 있는지 명확하고 간단한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안정된 애착관계, 기질적 요소, 문제 해결 능력, 사회적 지지와 긍정적 경험 등이 회복력을 키우는데 중요한 축을 차지합니다.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병원체 등에 적당히 노출될 때 오히려 면역력이 강해지듯이 큰 어려움이 없는 삶보다 일상의 난관들을 이겨냄을 통해 회복력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외적인 환경을 조절하려는 노력 뿐만 아니라 체력을 관리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관계를 쌓아가고,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 보며 감정을 관리하는 기술을 배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육체적, 사회적, 정서적 회복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영적 회복력 또한 키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시편 22편 12-15절을 통해 이 시편 기자가 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19절 이하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이 시편 기자가 가지고 있는 회복력을 확인하게 되는데, 주님께 의지하는 이 기자의 개인적인 고백 (19-10절)에서부터, 믿는 자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고백되어지는 공적 예배를 통한 회복 (22-23, 2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함으로 (24절) 굳건해지는 영적 회복력 등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라기로는 우리 모두가 이런 다각적인 회복력을 개발함으로 전인적인 건강함 가운데에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