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하는 다음 세대

최근 빅데이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세대별 특성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사회 조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몇몇 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한 보고에 따르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를 인생의 목표나 과제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닌, 다음 세대의 삶의 중심에 자리 잡은 불안을 반영하는 실제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다음세대를 기반으로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조사에서 참여자의 절반 이상은 현재 불안증을 겪고 있다고 답했으며, 많은 수가 친구를 사귀기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 역시 적지 않았다. 수많은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시대에, 정작 정서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된 상태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삶의 질이 꽤 향상된 오늘날 이러한 양상은 꽤 충격적이다. 굶주림이나 생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줄었고 기본적인 주거, 교육, 의료 등에서도 사회적 지원과 체계 역시 훨씬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는 도리어 만성적인 피로와 외로움, 그리고 경제적 불안 속에 살아간다. 물론 여전히 기근과 전쟁이 각처에 있지만 다음세대가 피부로 겪는 어려움은 외부에서 오는 요인이 아닌 무한한 정보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내부적인 고민이 더 커보인다. 이렇듯 방향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이 세대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먼저, 불안의 본질적인 원인이 되는 다음세대가 겪고 있는 외로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에서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는듯 보이지만 정작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오히려 어려움을 동반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며 정보를 나누지만 그 관계는 대체로 얕고 일시적이다. 물론 관심사나 마음이 맞다면 주변 어떤 관계보다도 온라인상에서 더 가까워질 수 있지만 여전히 언제고 끊어낼 수 있는 온라인 관계인 것이다. 관계의 양은 늘었지만 질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분명 언젠가 친구였던 사람인데 이름도 가물가물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다음세대는 관계의 질보다는 양을 더 중요시 여기며 많은 팔로워를 갖거나 드러내지 않고 그저 팔로우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분위기 속에서 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외로움을 은연듯 커져가고 함께 뿌리내리고 서로에게 영양분이 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점점 더 낯선 개념이 되어간다.

예상 불가하고 극도로 예민하며, 대부분이 ADHD를 탑재하고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을 직접 마주하고 돌보는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다음세대의 특징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이 단순히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명확한 스트레스 요인이 없는데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생기는 내면의 피로와 지속적인 불안에 둘러쌓여 있다. 도전을 두려워하고 갈등을 피한다. 발 빠르게 신뢰를 져버리고 다양한 경험을 귀찮아한다.

이들을 바라볼 때 종종 그들의 모습은 엉망진창이며 통제하기 어렵고 미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모습은 단순히 가정환경의 차이나 개인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기대하듯 완벽한 반응, 이상적인 태도, 매끄러운 적응력과 확실한 계획(완벽한 반응과 모습) 등을 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잘못된 자세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강한 공동체이다. 물론 선생님의 꾸준한 지지와 관심도 중요하지만 다음세대는 또래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바로 위 선배들의 영향이 컸다면 지금은 좀 더 가까운 친구들로 그 시선이 움직여 간 것이다.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느릴 때도 있지만 그들이 친구들과 함께 부딪혀가며 형성해 가는 분위기와 규칙들은 그들만의 신선함이 있다. 이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르다.


갈등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 가는 방법을 배우고 신뢰를 쌓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건강한 규범을 형성하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경험은 다음세대의 정서적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학교에서는 극심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고, ADHD 를 겪고 있는 친구들도 서로 도와가며 어느새 그랬냐는 듯 학업에도 상당한 성과를 보고, 좋지 않은 문화를 없애고 삶의 습관에 도전하는 등(전자담배를 끊자는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운동을 함께 하자는 의견을 내는 등) 서로 격려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선생님들의 깊은 이해와 인내가 뒷받침 되어 주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의 대단한 자질이 변화를 주도했다기 보다는 학생들이 느리더라도 함께 발맞추어 천천히 걸어주고, 들어주고, 바라봐 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듯 비록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음세대가 충분히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갈등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향해, ‘요즘 애들은 왜 이럴까‘가 아닌 저들의 좌절과 실패, 충격과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실패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 아닌, 어떤 위험도 겪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 도려 실패를 경험할 기회를 주고, 그 실패의 자리에서 함께 있어 주며, 그들만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의 기회와 회복의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혹시라도 내 말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이런 말이 부담이 될까해서 말을 아끼기 보다는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삶 속으로 다가가는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내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정답을 제시해서는 안된다. 물론 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좌절, 실패, 충격, 실수등에 움츠러 들겠지만 그런 불안 중에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공동체를 형성해 주는 것이 기성 세대가 해야할 몫이다.

최근 교회 공동체와 함께 이 세대의 심각한 정신 문제인 불안과 외로움에 대해 연구하던 중, 성경 속에서 불안과 씨름했던 인물들을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은 단지 승리와 기적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 중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대표적으로 다윗의 삶을 보면 젊을 때는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목숨의 위협을 느꼈고,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을 겪었다. 또한 왕이 된 이후에는 우리야와 밧세바 사건으로 인한 죄책감, 노년에는 아들의 반역과 가정의 붕괴 등으로 인해 극심한 고민과 정서적 고통을 겪었다.


다윗이 쓴 시편에는 그의 불안과 탄식, 그리고 회개와 갈망이 그대로 녹아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와 같은 절규부터 ‘그럼에도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는 고백까지. 그의 마음의 진폭은 기성세대 그리고 지금 다음세대가 겪는 감정의 깊이와 동일한 종류의 것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 모든 감정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그는 회개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으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된 것이다.

엘리야 역시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에서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기적을 경험한 직후, 이세벨의 협박에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차라리 내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한다. 그의 절망과 불안, 외로움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고 재우며 쉼을 주고 회복시켜 주신다.


이 외에도 불임 가운데 수치심을 하나님께 가져간 한나, 온 힘과 열심을 다해도 아무 변화가 없는 민족의 멸망 앞에서 깊은 절망에 빠졌던 예레미야, 심지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예수님의 불안과 갈등까지. 이 인물들의 자세와 기도를 볼 때 믿는 사람이라면 ’불안감을 갖거나 시달리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변을 떠도는 수많은 정보와 가벼운 관계들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마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가볍게 여겨지는 현실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다.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하며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매일 보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불안이나 외로움은 우리 삶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그 불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고, 회복시키시며, 능력을 주시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진리는 세대가 지나도 변함이 없다.

그저 수많은 의견만 있을 뿐 가벼운 정보가 난무한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 내가 깨닫고 알고 있는 진리를 쥐어 줄 수는 없다. 진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제공할 때, 목회자나 선생님 어른들은 감시자나 통제자가 되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외로움 속에 있는 다음세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알아가고, 언제고 손을 뻗으면 진리로 인도해 줄 신뢰를 갖춘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이러한 진리가 중심된 교회 공동체에서는 갈등이 있어도 끝내 회복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며, 서로 짐을 나눠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자칫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고쳐보려 해서는 안 되고, 비록 느릴지라도 위험해 보일지라도 기다려주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힘쓰며, 동시에 교회에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를 신뢰해야 한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간섭이 없더라도, 성령님의 개입과 인도하심을 더욱 신뢰한다면, 내면의 고민을 가진 다음세대가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기회를 더욱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의 기준에 부합하는 실수나 실패가 없는 모습이 아닌, 깊은 내면의 회복과 안정을 갖는 다음세대가 될 수 있도록 인내하며 중보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