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예후다, 유대인의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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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벤 예후다의 현대 히브리어>

예루살렘에 가면 ‘벤 예후다’라는 거리가 있다. 서울의 명동과도 같은 곳이다. 수천 년의 전통을 이어온 예루살렘 한 복판에 최첨단의 패션과 유행을 자랑하는 벤 예후다 거리가 있다.

햇볕 가득한 날, 길거리에 마련된 찻집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과 건물들을 바라보면, 마치 스페인의 화려한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한국이나 뉴질랜드도 그렇듯이 이스라엘에도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딴 길이나 장소가 많다. 비행기를 타면 이스라엘 벤 구리온 공항에 도착한다.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 초대 수상의 이름이다.‘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도 많이 있는데, 로스차일드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해 대단히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이다.

‘벤 예후다’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현재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인 현대 히브리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판 세종대왕이라 할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으로 시작된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은 언어가 된다.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라를 잃고 전세계에 흩어져2천년 이상을 살아가던 유대인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 1948년 5월 13일에 일어난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세워지게된 것이다. 자신들의 나라가 세워지니 전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한가지 큰 문제가 생겼났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따랐던 것이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벤 예후다
벤 예후다는 러시아령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느 대학교에서 중동 역사와 정치 등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며, 특별히 고급 히브리어 과정에 열중하였다. 공부를 마친 후 1886년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된다.

언어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그는 구약성서를 근거로해 복원한 현대 히브리어를 만들어내 자신의 부인과 자녀에게 가르치고 그 언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

아들이 태어나자, 그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영어나 독일어, 불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을 전혀 가르치지 않고 그가 만든 히브리어만을 가르쳤다. 아이가 4살 때 말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주변 아이들과는 전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벤 예후다의 이런 노력을 단지 엉뚱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였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지도자들도 언어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유대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아슈케나짐(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사람들)들은 이디시어(독일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대인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점차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온 유대인 사이의 공용어 문제가 부상하면서 벤 예후다의 아이디어가 부각되어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탄탄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그의 노력으로 결국 그가 만든 현대 히브리어가 지금 이스라엘의 모국어가 되었다.

언어에 탁월한 유대인들
전세계에 흩어졌다 다시 모여든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와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이스라엘에 귀환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고 그 다양함에 많은 사람들이 열려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2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안다. 가장 기본적인 언어가 히브리어와 영어이고, 어떤 사람은 여기에 아랍어, 혹은 유럽 언어들을 능통하게 사용한다.

우리 아이들이 매주 토요일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였는데, 한번은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워낙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보통 외국 사람과 이야기 할 때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한참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어인듯 했다. 내가 알아 듣지 못한 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와 독일어를 너무나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7개 언어를 거의 모국어 처럼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독일 사람이고, 어머니는 프랑스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위스에서 살았다. 독일어, 프랑스어, 스위스어 3개국어를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이스라엘로 이주 한 후 히브리와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후에 아랍어와 스페인어 등을 배웠다고 한다. 영어 하나 더 배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무엇일까?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2000년 초반에는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였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던 하이파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러시아인 밀집 지역을 가면 이곳이 이스라엘인지 러시아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히브리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에게 물어 보았다.

이러다 러시아어가 제1 언어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히브리어로 수업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자녀가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는 사라질 것이라고.

2천년 이상 사용하지 않던 언어를 다시 회생시켜 국가 공용어를 만들어 낸 민족인데, 잠시 유행하는 러시아어에 히브리어가 희생될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벤 예후다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항상 가장 큰 부담은 영어다. 영어를 정복하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넘사벽이다. 가끔씩 유대인들처럼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유연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사실 나는 이스라엘 대학에서 현대 히브리어를 배울 때 시험을 보면 항상 1등을 하던 학생이었다. 성서 히브리어를 한국에서 공부하고 신학대학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기도 했기 때문에 문법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히브리어를 가르치던 유대인 선생님이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문법을 저에게 물어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 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어로 가장 말을 못하는 학생이 또한 나였다는 것이다. 영어만 구사하며 자라난 미국 유대인 학생들은 문법에 잘 맞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히브리어로 이야기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을 하기 전에 그 말이 문법에 맞는지, 틀린 말은 아닌지를 머리 속으로 먼저 생각했다.

결국 나는 일상에서 사용하지도 못하는 죽은 것 같은 언어를 배웠고, 미국에서 온 유대인 학생들은 일상에서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이 그랬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의 언어적 창조성과 열정이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벤 예후다 처럼. 감사한 일이다. 한국말을 귀하고 아름답게 잘 사용하고 싶다. 또한 세종대왕과 벤 예후다 같은 언어에 대한 열정이 있어 영어도 잘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