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서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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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던 한국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문화 차이를 비교해 보면서 제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차이는 바로 농사짓는 사회와 목축하는 사회 사이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한국은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대대로 살아야 했고 경험 많은 이들의 노하우가 필요한 사회였으며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협동이 매우 중요했고 상호신뢰가 당연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들을 맞아들이는 일에 익숙지 않았지요. 그러나 일단 함께 지내며 서로 얼굴이 익고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친해져 마치 가족처럼 지내게 되지요. 때문에 모두와 다른 면을 보이며 튀는 사람들에게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반면 뉴질랜드는 목축하던 사회였던지라 목초지를 찾아 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기 힘들었고 그래서 낯선 이들을 자주 만나야 했으며 낯선 이들에게 내가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노라는 의사전달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당연히 낯선 이들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정작 깊은 속내를 터놓고 지내는 것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영역에 다른 이들이 침범하지 않는 암묵적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문화차이를 이해하면 뉴질랜드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인종차별처럼 밑도 끝도 없는 한심한 일이 있겠나 싶은데요, 일전에도 밝혔지만 어떤 한 인격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를 근거 없이 비방하고 멸시하는 것은 당연히 삼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공정하고 당연합니다.

인종차별은 인종적 편견, 열등감 혹은 지나친 자신감, 상대문화에 대한 무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는데요, 인종차별의 원인을 한번 고려해 본다면 우리가 당하는 인종차별을 이 땅에서 서서히 사라져버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혼자서 캐나다 토론토에 반 년짜리 어학연수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짧은 여행으로 다닌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장기간 계획으로 떠나본 것이 처음이라 설레임과 기대감에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선진국에서, 내 하나라도 더 배우리라’는 열의가 가득했었지요.

토론토는 영하의 추운 날이 반년이상 지속되는 곳이어서 10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갑자기 영하 15~20도를 우습게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위를 피하기 위해 도심에서는 지하철과 지하보도가 잘 건설되어 있었어요.

건물과 건물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추운 거리 대신 따뜻한 지하로 다닐 수 있게끔 건물들을 서로 연결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건물들 사이마다 출입문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바빠도 문을 먼저 열고 지나간 사람들은 반드시 뒤따르는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을 잡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한가하면 모르겠는데, 출퇴근 시간에도 예외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와~ 역시 선진국 다르다’ 이렇게 여겼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곳을 지나다 보니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문을 잡아주는 그 행동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 자동으로 행동하는 것일 뿐 배려나 친절, 이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달라’ 마인드가 좀 바뀌었습니다. 대단해 보였던 그 친절이 그냥 습관, 관습이었던 것이었죠. 그냥 그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하는 일이지 친절도 배려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키는 그 관습’을 완전 무시하는 이들이 나타난 겁니다. 이름하여 외/국/인/.

이들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킬 그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몰라서, 익숙지 않아서 지키지 않는 것일 뿐, 누구를 괴롭게 하려고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닌데 원주민들이 보기에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인종차별’로 나타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들 있지 않나요? 그냥 우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 지켜왔던 우리의 전통, 가치, 관습을 무시하는 듯 행동하는 이들을 내외하지 않았던가요? 그것이 바로 인종차별인데 말이지요. 이런 인종차별의 근절을 위해 우리가 다같이 노력해야 하지만, 인종차별의 원인이 되는 인종적 편견을 깨어줄 노력도 필요합니다.

다른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크라이스트처치의 시내버스는 65세 이상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골드카드’를 보여주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리고 오후 6시 30분부터 마지막 버스까지 무료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에 충분한 공헌을 했던 은퇴자들에게 사회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즉, 골드카드를 지니고 있다면 그 사람이 이 사회에 대한 기여가 충분했던 사람임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이를 넘겼기 때문에 발급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 사회에 대한 기여가 있었던 사람(골드카드를 가지고 있으므로)이 Thank you, hello 정도의 간단한 영어도 한 마디 못한다면? 그런 노력조차 없다면? 그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회에 늦게 이민 와 기여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면 이제라도 적응하고 하나되려는 노력은 있어야 합니다. 영어도 사용하려 노력하고 키위이웃들과 지속적인 교류도 가지려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도 하려 노력한다면 인종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인종적 편견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정착하고 이 땅을 일궈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왔기 때문에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익숙합니다만 외국어를 필수적으로 배울 필요는 없었던 대부분의 키위들은 이 땅에서 외국어가 넘쳐나는 상황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많은 키위들이‘우리가 힘들게 이 땅에 와서 어렵게 일궈낸 열매들을 듣고 보지도 못한 외국인들이 몰려와서 다 차지하고 누리는구나… 우리는 여전히 고생 중인데, 저들은 우리의 힘든 열매들을 거저 먹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더랍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크라이스트처치에 2011년 큰 지진이 나서 많은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 때, 이 사회의 재건을 위해 많은 아시아인들이 이 땅에 들어오고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덕분에 서양인들이 힘들게 쌓은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새롭게 재건하는 사회로 인식하게 되어 이제 함께 더불어 발전해가는, 세련되게 세계화되는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문화든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해치는 외부인에 대해 거부감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우선으로 한다면 인종차별이니, 이민반대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목소리들을 근절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