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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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 있다. 어마 무시한 용이 개천에서 난다고? 뭔 소린가 한다. 강이나 호수쯤이나 되면 모를까? 개천과 용은 짝이 안 맞는 그림이다. 평범한 가정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인물들이 성공자의 반열에 올랐을 때 세상이 그들을 가리키면서 쓰는 말이다.

용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다. 인간들이 만든 상상력의 창조물이다. 무소불위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신화집인 산해경에 처음으로 용이 등장한다. 머리는 낙타이고, 눈은 토끼, 귀는 소이며, 몸통은 뱀으로, 배는 조개이며, 비늘은 잉어이고, 발톱은 매이고, 발바닥은 호랑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상상력으로 인한 창조물이 경이롭기만 하다.

동양과 서양이 용을 보는 해석도 흥미롭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서양은 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양은 악을 상징하는 영물로 본다. 용, 사단 마귀 등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용은 인간에게는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이다. 용은 신의 단면이며 우주의 지배자이고 신들의 세계에 있는 동물이다. 용은 지혜와 권력과 부와 명예의 상징이다.

그래서 동양의 고대 왕조시대에는 황제의 얼굴을 용안, 임금의 의복을 용포, 황제의 자리를 용상이라고 한다. 용의 발톱 그림으로 권력의 위계를 표현함도 흥미롭다. 용의 발톱이 5개이면 황제를 칭한다. 용의 발톱이 4개이면 대국의 변방이나 소국의 왕이다. 용의 발톱이 3개이면 왕 아래의 만인지상인 제후를 통칭한다.

이렇게 상서롭고도 지상 최대의 영물인 용을 현대 정치판에 비유함도 캐미가 아닐까 하여 소개한다.

1993년을 시발로 뉴질랜드의 이민정책이 문호를 개방한다. 아시안 중에서도 최고 학력을 자랑하는 한국인들에게는 황금의 기회였다. 점수이민제도는 한국의 고학력, 안정된 직업 군의 준 중산층 그룹들을 뉴질랜드로 대거 유입하게 한다. 1998년까지 일반이민의 러시가 이어진다. 코리안 이민 황금기이다.

초창기 이민자들 대부분은 영어소통과 문화의 충돌로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이 기간에 이민자들에게 큰 위안거리는 고국에서 보내 오는 비디오 테이프이다.

KBS 대하 드라마인 <용의 눈물>도 그 중에 하나이다(1996.11.24~1998.5.31). 원작은 세종대왕(월탄,박종화)이다. 총159부작으로 최고 시청률 49%이다. 서사적 재미도 무궁하다.

패망의 짙은 그림자로 암울했던 고려 말로부터 20세기말의 한국 현대사로 오버랩 되는 장면 장면은 시청자들의 넋을 놓게 한다. 기울어가는 고려를 역사 속으로 강제 퇴장 시키는 이성계장군의 등장이다. 위화도 회군을 시발로 막강한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다. 미약했던 왕권이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절대권력 앞에 무너진다. 기울어져 가는 고려 왕조의 버팀목이던 정몽주의 주살로 새 역사는 만들어 진다.

조선왕조 500년의 서막이 오른다. 태조 이성계의 시대가 화려하게 열린다. 새 정치의 정략가인 정도전과 권력구조의 정점으로 떠오르는 이방원과의 대립 각은 매회마다 채널고정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갇혀서 피의 모자이크를 그리던 야심가들의 영욕의 부침은 당시의 영락없는 5공, 6공들의 행적과 작태이다.

드라마 속에서 과거와 현실이 절묘하게 치환된다. 정상모리배들의 암중모색과 권력의 그늘아래로 숨어 들어 가는 정치꾼들의 이합집산이 현대 정치판의 모자이크이다. 용의 눈물의 연출자인 김재형 PD의 연출변이다.‘나는 이 드라마를 통하여 역사의 인과응보(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합당한 이치가 있다)와 사필귀정(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이치로 돌아간다)을 그리고자 했다. 칼로 잡은 정권은 칼로써 망한다.’

칼(권력)로 조선왕조를 일으킨 이성계는 칼의 계승자인 이방원(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에게서 피의 대가인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권력의 축이 이방원에게 기운다. 이방원의 칼날에 이성계의 아들들이 무참히 살해 당한다. 동생의 손에 죽어 나가는 형들, 형의 손에 비명 횡사하는 동생들의 저승 행렬이 이어진다. 피의 연출자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저승야차들의 환생이다.

1964년 12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파독 광부들이 일하던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다. 당시 탄광회사 강당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250여명이 모였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애국가가 시작되자 앞자리 간호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두 울먹이며 애국가를 부른다. 대통령 내외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찍는다.

박 대통령이 ‘여러분,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하자 강당은 꺼이꺼이 하는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박 대통령의 눈물 섞인 위로의 말씀이다.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서 여러분이 이 먼 타국까지 나와 고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