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서 상생하며 공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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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려’에 관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버스를 운전하든 자가용을 운전하든 도로 위에서는 다른 차들과 함께 공생해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도로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것이니만큼 반드시 서로 간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 배려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좋은 도구가 되지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들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 늘 이 배려가 습관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운전을 하다 보면 배려가 없는 운전자들을 만나 진땀을 빼곤 합니다.

칼치기는 무서워
다른 차를 추월하거나 끼어들 때, 마치 차를 부딪힐 듯 칼같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속칭 칼치기라 부릅니다. 물론 이것은 명백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아무리 운전을 잘 하는 운전자라 할지라도 순간적 실수, 혹은 찰나의 차이로 생사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앞서 가고 있으면 아무래도 시야가 가려지니 답답할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일부 운전자들이 그 답답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운전실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근길 시내중심가 공사중인 도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날렵한 고가의 2인승 차량이 제 뒤에 붙었습니다. 큰 길에 들어선 후 저는 버스노선을 따라 차선변경을 했고 그 와중에 뒤따르던 차의 앞길을 막았나 봅니다.

그 때 순간적으로 그 차가 버스를 추월해 버스 앞으로 칼치기를 해 들어왔고 버스 앞에서 급정거를 하며 위협을 했습니다. 놀란 저 또한 급정거를 했고 출근길 승객들도 더불어 함께 깜짝 놀랐지요. 순간 제 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욱’이 올라왔습니다.

버스야 다칠 이유가 없지만 그 차는 2인승 차량이라 버스에 받히면 곧장 반파 이상이거든요. 제가 그대로의 제 성격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 차는 보란 듯이 급 출발을 했고 이미 사거리의 신호가 빨간 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휑하고 지나 멀리 사라져갔습니다. 덕분에 놀란 버스기사와 승객들만 남게 되었지요.

안전거리 확보
버스를 비롯한 대형차량들은 일반 승용차에 비해 제동거리가 긴 편입니다. 때문에 대형차 기사들은 항상 앞 차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운전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안전거리를 빈자리로 알고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차들이 있습니다. 뭐 보통의 경우야 별 일이 없지만, just in case!

만약 앞 차량이 급정거하고 뒤따르던 대형차의 제동거리가 길어진다면… 어휴~. 그래서 대형차 기사들은 앞선 차량과의 안전거리 공간에 다른 차들이 갑자기 끼어들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모두의 수명유지를 위해 배려운전 해야겠지요?

버스에 양보하세요
버스가 없는 거리를 생각해 보셨나요? 버스가 없으면 길거리 정체가 훨씬 나아질 것 같지만 사실 버스 이용승객들이 다 일일이 자기 차를 가지고 나오게 되어 혼잡이 더 가중될 것입니다.

버스 이용승객들이 많아진다면 승용차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어 도로상황이 훨씬 나아지겠지요. 버스가 원활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버스에 도로를 양보해 준다면 우리의 출퇴근 길은 더 빨라질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양보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쉬운 섬김입니까?

버스 운전 애로사항 중에 하나가 버스 정류장에 멈췄다가 도로로 다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요.

어떤 운전자들은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보다 앞서 가기 위해 목숨 걸고, 사명감 가지고, 정성을 다해, 최대한 속도를 내어 버스를 추월해 나갑니다. 분명히 버스에 양보해도 될 만큼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도 말이지요. 잊지 마십시오. 지금 정류장을 벗어난 저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멈춰섭니다. 그 때 추월해도 늦지 않습니다.

한번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내어 버스를 추월해 나갔습니다. 이 차는 앞선 다른 차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위험하게 운전하며 내달리더군요.

그러나 도심의 도로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사거리 신호등에 계속 막히게 되었고 그 때마다 제 버스를 만났습니다. 결국 시내에 이르렀을 때에 보니, 그렇게 열심히 내달리는 그 차가 버스 바로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더군요. 도심에서는 위험하게 곡예운전을 하며 내달려도 결국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고위험만 높아지고 기름만 더 닳을 뿐이지요.

스쿨버스
NZTA 통계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매년 7명 정도의 아이들이 스쿨버스 보행 관련 사고로 사망하고 7000명 정도의 아이들이 다치고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일단 스쿨버스가 도로에 나타나면 모든 차량이 이를 위한 배려운전을 해야 하며 만약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승하차 시킬 경우 길을 지나는 모든 차량, 즉 반대방향에서 마주 오던 차량들도 모두 정차해야 합니다.

뉴질랜드의 경우 상대적으로 꽤나 느슨한 규칙이지만, 스쿨버스가 정차하여 학생들을 승하차시키고 있을 경우, 이를 추월하려는 모든 차량은 시속 20킬로 이하로만 지나야 합니다. 이를 모르는, 혹은 이를 무시하는 운전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굳이 벌금이나 면허정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스쿨버스 추월 속도제한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겠지요?

양보운전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자기 차를 추월하는 것을 혐오하는 심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심리는 자기가 운전하고 있는 자기 앞 도로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분명 도로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생각하고, 또 내 앞을 끼어드는 차를 도둑이나 강도로 여겨 적대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가요? 내 것도 아닌데 빼앗겼다고 생각해 분노하며 억울해 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요?

마치 마귀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때 쓰는 방법 같지 않나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내 것인 양 여기게 만들어 내 인생을 허비하게 만드는 게 어쩜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양보하고 손해 보며 살아도 내가 없어지는 일은 없는데 말이지요.

내가 양보하고 선을 베풀면 그 선이 곧 내게 돌아 오지만 악을 베풀고 악으로 악을 갚으면 그 악이 곧 내게 몇 배로 다가옵니다.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찾았습니다. QR 코드로 첨부된 영상을 함께 보시면 내가 베푼 친절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에는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도로 위에서 대형차들과 공생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위험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죄인들을 이해하시고 품으시고 용서하셨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예수님을 흉내내어 보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도로 위로 나온 차들이니만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하며 운전대를 잡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