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기독교인 억압을 받아

태국에 원래는 한 달을 기약하고 갔었지만 나는 더 지내게 되었고, 한 달이 지나고 비자를 두 번 갱신해 총 2달 반을 있게 되었다. 한번은 돈을 주고 갱신했고, 한번은 라오스를 갔다 오면서 자동적으로 한 달이 더 생기게 되었다.

동남아에 있는 동안에 주위 나라들도 가보고 싶었지만 마냥 여행만을 목적으로 가는 것 보다는 그들의 삶을 좀 더 깊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랬다.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기독교인으로 그곳에서 사는 것은 어떤지, 그곳의 기독교인들은 어떤지. 마침 아는 분이 라오스에 있어서 그분을 통해 라오스를 잠깐 다녀오게 되었다.

라오스는 태국과 가깝고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곳이었다. 태국에서는 종교적 자유가 있었지만 라오스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자유가 없었고 기독교인들이 핍박까지는 아니지만 억압을 받는 곳이었다. 예배를 드리다가 들키면 쫓겨났다.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함부로 찍으면 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조심해야 했다.
나는 최대한 학교의 모습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등을 찍지 않았다. 혹시나 나로 인해 피해를 볼까 봐서였다.

생긴 모양도, 사람들도, 언어(라오스의 언어는 거의 태국어와 비슷하고 텔레비전도 태국 방송을 보기 때문에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어를 알아듣는다고 했다)도, 사는 모습(시장에 갔는데 캄보디아와 태국의 전통 시장과 모양이 정말 비슷했다) 등이 참 비슷했지만 또 라오스는 라오스만의 느낌이 있었다.

또한 태국만큼, 어쩌면 태국보다 더 불교 신전이 많았고 그래서 라오스에서 태어나면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분은 라오스의 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학교는 대놓고 기독교 학교는 아니었지만 기독교 학교였으며 선교사 자녀들과 사업 때문에 라오스에 사는 분들의 자녀들이 많이 다녀서 실제로 라오스 친구들보다 한국 친구들의 비중이 꽤 컸다.

그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쓰는 기독교 교제를 학교 커리큘럼으로 사용했고 그렇게 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문제 없이 운영되고 또 실제로 그 커리큘럼이 지금 정부 기관에 등록 비슷한 것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신기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누가 봐도 대놓고 기독교 내용의 교제인데 이렇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곳의 선생님들도 물론 돈을 받지만 하나님을 전하고 섬기려는 마음으로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보면서 다시 한번 섬김이란 쉽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과연 이 학교에 와서 섬길 수 있을까? 이 덥고 먼지 많은 곳에서?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도 많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과연 섬긴다는 마음으로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나는 마침 타이밍이 맞아 그 학교의 고학년들과 가까운 곳으로 수학여행 비슷하게 갈 때 따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운이 좋게 라오스의 유명한 곳들도 돌아보고 또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곳에서 사는 친구들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생각이 있는지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국과 캄보디아에서의 시간만큼 나에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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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정
더니든에 있는 오타고 대학교 졸업. 약사. 사랑의교회 청년. 약사로 일하다가 1년 내려놓고 캄보디아와 태국 선교지에서 반년을 있었고, 나머지 반년은 한국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하게 경험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