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은 언제쯤 올래나?”
“올 때가 됐는데….”
요나와 바나바는 갈매기 무리와 함께 긴 해외여행을 떠난 기드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어디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바나바에게 요나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염려 붙들어 매슈! 우리보다 훨씬 더 재밌게 놀고 있을 테니까.”
바로 그때였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둘의 귓가로 날아들었다.
“안녕, 친구들!”
오, 기드온이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기드온은 뜻밖에도 첨보는 암컷 갈매기와 함께 서있었다. 누군진 몰라도, 요나는 기드온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만큼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기드온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음, 저…..내가 너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분이 있어.”
“쿡!”
어색해하는 기드온을 보며 바나바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은 들릴라야. 우린…..그러니까, 서로 좋아하고 있어.”
“그래? 언제부터?”
“여행 중 내내. 우리가 왜 이제야 만났는지 모르겠어”
기드온이 너스레를 떨었다. 요나는 사랑에 빠진 기드온을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릴라에게 정감이 가지 않았다. 새와 물고기의 눈이 이토록 서로 다른가? 무엇보다 요나는 그녀의 차가운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안녕! 너흰 참 운 좋은 생선들이구나. 갈매기와 친구가 다 되다니. 어쨌든 싱싱해 보여서 좋네. 어머, 호호호, 내가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네!”
누가 들어도 둘을 무시하는 거만한 말투였는데도 기드온은 뭔가에 홀린 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들릴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두 갈매기 연인들과 헤어진 요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문득 바나바의 안목도 자기와 다른 게 아닐지 염려되어 물었다.
“바나바, 저기 저 수초 말이야. 내겐 예뻐 보이는데, 넌 어때?”
“저거? 예쁘네. 예쁘고말고.”
“그럼, 저 바위덩어리는?”
“음, 저건 울퉁불퉁해서 미운데. 근데 왜 그래?”
요나는 바나바의 눈이 자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바나바, 다음에 네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내 의견도 물어봐 줘. 그래 줄 수 있지? 우린 친구니까.”
“응? 후훗. 그렇게 하지. 근데 그런 일이 있기나 할까? 하하하.”
그렇게 둘의 맘은 불편했지만, 둘이야 어떻든 기드온은 들릴라에게 푹 빠져있었다. 어느 날은 기드온이 웃음보를 터뜨리며 말했다.
“들릴라는 되게 웃겨.”
“뭐가?”
“내게 왜 그렇게 날래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바나바가 다음 얘길 재촉했다.
“농담으로 머리에 붙은 털 때문이라고 했더니, 내가 깜빡 조는 사이에 머리털을 쪼고 있는 거야.”
“왜?”
“내게서 잘난 구석이 없어져야 다른 암컷이 넘보지 않을 거라면서.”
“???”
요나는 그 말을 들으며 들릴라가 역시 좋은 성품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기드온이 좋으면 그냥 좋아하면 될 일이지, 왜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려 들까?
들릴라가 등장하면서 기드온은 삼총사 따윈 다 잊은 듯 했다. 허구한날 둘이서만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것이었다. 그날도 둘은 산으로 들로 데이트를 다녔는데, 그러던 중 예사롭지 않은 장면 하나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장면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예수였다. 그의 뒤를 수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었는데, 웬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 모습을 본 들릴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사람, 나병환자잖아!”
기드온도 몹시 의아했다.‘나병환자가 어찌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나병환자는 부정한 자였으므로 공동체에서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근데도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체 어쩌자고?
“그냥 갈까?”
들릴라가 깔끔떠는 성격인 줄 잘 아는지라 기드온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들릴라의 반응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잠깐만. 예수가 뭐라는 지 들어나보자구.”
그녀의 눈빛은 평소 같지 않게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과연 예수는 그녀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즉시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 몸에 대고 말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실로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났다. 나병이 그 자리에서 말끔히 사라진 것이었다.
“방금 저 분이 나병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댄 게 맞지?”
거만한 성품의 들릴라가 대뜸 예수를‘분’이라 호칭한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흐음, 놀랍네, 놀라워. 어찌 말 한마디로 나병환자가 치유될 수 있지? 근데 그 전에 난 예수가 그의 몸에 손을 댄 것부터 진짜 놀랍네.”
“들릴라! 나병환자에 손을 댄 게 뭐 그렇게 대수야?”
그러나 들릴라는 기드온의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독수리, 솔개, 매, 까마귀, 타조, 올빼미, 가마우지, 부엉이, 따오기, 백조, 고니, 왜가리, 오디새, 박쥐 그리고 갈매기”
난데없이 새들 이름을 들릴라가 줄줄이 외자, 쭉 듣고 난 기드온이 그제야 아는 체를 했다.
“그건 사람들이 먹지 않는 새들 이름이잖아. 율법에서 부정하다는 거지.”
“맞아. 갈매기 역시. 난 그 동안 우리 갈매기가 그렇게 부정한 새로 취급되는 게 너무 기분 나빴어. 근데 예수는 놀라워. 부정한 걸로 치면 최악인 나병환자 몸에 손을 대다니! 기드온! 저 분이라면 우리와도 친구가 되어주실 것 같아.”
이날 이후 들릴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들릴라 표현으론 자기가 율법이 아닌, 은혜를 만난 탓이라고 한다. 차갑던 그녀의 성품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요나가 낚시꾼에게 맞아 죽은 메기 얘기를 들려줄 땐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 들릴라를 잠시 두고 삼총사가 호숫가 돌밭, 만남의 광장에 다시 모였다. 셋은 입이 근질근질했다. 요나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들릴라가 저렇게 바뀔 줄이야.”
그 말에 바나바가 소리쳤다.
“이건 기적이야. 예수의 또 다른 기적이라구!”
두 친구의 말에 기드온이 화답했다.
“거봐. 내가 여자 보는 눈이 있지?”
그러자 셋이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하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해는 뉘엇뉘엇 호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오랜만에 뭉친 삼총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들릴라 얘기 보를 풀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