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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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약이라 함은 ‘옛 언약’이란 뜻이고 신약은 ‘새 언약’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성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 것일까?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
옛 언약은 피를 매개체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인 사이에 맺어졌다. 희생제물로 사용된 소 피의 절반은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제단에 뿌려졌고 나머지 절반은 백성에게 뿌려졌다.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애굽기 24:5-8).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을 기념하며 마셨던 네 잔의 포도주 중 마지막 네 번째 잔을 들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붓는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퀸노메논’은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피를 흘리게 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흘리실 피는 좁게는 그곳에 모인 제자들을 위해, 넓게는 온 인류를 위해 흘리실 피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새 언약이 맺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누가복음 22:20).

옛 언약은 돌판에 새겨진 것으로 상징된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돌판에 직접 새겨 주셨고, 그 외의 율법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모세가 완성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 종교적인 의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 이런 율법 아래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이스라엘인은 율법을 지키는데 철저하게 실패하였고, 그들은 여전히 죄인으로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명기 4:13).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0).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돌판이 아닌 마음 판에 기록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새 언약 아래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새 언약에 참여한 자의 마음에 들어와 함께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돕고 이끌 뿐만 아니라 능력과 믿음을 갖게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1:31-34).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3: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 전서 3:16).

옛 언약의 역할
옛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이 없이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양심이라는 보조 수단이 있기는 하지만 타락한 인간에게 양심은 더럽혀지고 왜곡되어 있어, 온전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오직 율법을 통해서만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자이며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옛 언약을 통해 율법만 주신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실지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시작하게 하신 분으로 저주로 상징되는 율법의 시대에서 축복으로 상징되는 은혜의 시대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 하였느니라”(로마서 5:13).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