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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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본다. 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민족, 언어, 문화 그리고 음식과 교감하며 세상의 수많은 다른 인생들과 연결되는 체험은 좁고 무지한 나의 사고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1년이 넘는 여행을 마친 뒤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와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아시안 하이웨이 대장정을 잘 마쳤는데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1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중국 절강성 이우(Yiwu)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다.

전세계의 상인들이 몰려드는 무역도시인 만큼 영어, 중국어, 아랍어 등 3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능력자들을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호텔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예멘, 터키 출신의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중동 음식점을 매일 저녁 순례하는(?) 것이 이우 출장 중 가장 즐거운 일이다.

출장지 안에서 떠나는 아시안 하이웨이 모험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아랍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가 지금 중국에 있는 건지 중동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여행의 매력은 ‘떠남’ 에 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일상을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업무를 반복하며 별다른 새로움 없이 잔잔히 살아가는 것은 무척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일상을 사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는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심심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토록‘떠남’을 갈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떠남의 끝에는‘돌아옴’이 있는 법이다. 여행지에서 뼈를 묻고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옴 이후엔 또 다시 심심하고 반복스러운 일상과 마주해야 하기에 어떤 이들은 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기도 한다.

여행을 잘 마치고 난 뒤 나에게 스스로 던진 질문,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일상에서 여행자처럼 사는 삶으로 답하기로 했다
정확히 1년 전부터 남아시아에서 온 무슬림 배경의 회심자인 형제 술레이만(가명)과 플랫메이트로 한 지붕 안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고 있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수년간 살며 메카 성지순례까지도 참여한 적이 있는 열심 있는 무슬림이었던 형제 술레이만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회심을 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돼지고기를 멀리한다. 그런 그를 배려하기 위해선 같은 주방을 쓰는 나도 본의 아니게 돼지고기 금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클랜드에 있는 무슬림 디아스포라 이방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웃과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이 언제든지 와서 마음의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공동체 FFF(Friends of Friends Fellowship) 에서 한국인, 키위, 아프리카 선교사님들과 함께 섬기게 된 것도 여행을 일상으로 답하고자 내린 삶의 선택 중 하나였다.

본국에서의 전쟁, 정치상황, 그리고 핍박 등을 피해 이 먼 곳까지 와서 망명자로, 난민으로, 혹은 외로운 이민자나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마주하며 이 평화로운 뉴질랜드에도 이런 모습이 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 형제 이브라힘(가명) 은 자신의 고향 L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가던 촉망받는 30대 초반의 청년이었지만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땅을 뒤흔든‘아랍의 봄’혁명 이후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테러와 내전으로 인해 이브라힘은 사랑하는 가족,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많이 잃었다. 고향 땅을 떠나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5개국을 떠돌며 고생을 하다가 가까스로 뉴질랜드로 오게 되어 정부의 난민 승인을 받아 지금도 홀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다.

올해 초부터 이 친구의 집을 틈틈이 방문하며 함께 먹고, 기도하고, 성경말씀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며 우정을 나눴다. 그는 여전히 심한 고문과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수면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는 것도 쉽지 않은 날들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고통을 잊기 위해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이웃에게 발견되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고, 선한 마음씨로 섬나라 걸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했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핸드폰을 갈취 당하기도 했다.

눈에 멍이 들고 만신창이가 된 이브라힘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는 것을 돕고 상처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함께 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달 전 이브라힘은 계속해서 본국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소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그날 밤 나를 불러 자신의 아랍어 친필과 서명이 쓰여있는 유서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며 ‘대체 평화는 어디 있는 걸까?’ 질문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쉬고 싶다며 자신이 편히 갈 수 있도록 가만 놔두라는 그의 눈빛에는 한번도 내가 만나보지 못한 절망, 두려움, 분노 그리고 슬픔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이브라힘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이 형제의 삶을 가까이서 듣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기도하며 아무리 둘러봐도 이 땅에 보이지 않는 평화와 평안을 이 친구가 곧 만나게 되기를 소망하며 이웃이 되어, 친구가 되어 중보하며 기다릴 뿐이다.

이제 나에게 일상은 여행지보다 더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민족과 무슬림 디아스포라들과의 교감은 아시안 하이웨이에 위치한 견고한 선교지로 나아가는 것 이상의 ‘접근의 힘’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신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이 죄로 물든 소망 없는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하는‘소통’이었다고 누군가 말했다.

1년이 넘는 긴 여행의 목적이 아시아와 중동 대륙의 땅과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함이었다면, 이제 그 마음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해 신음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안에 있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소통하며 일상에서의 여행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내 평생의 가는 길” 찬송가 아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