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조선조 영조임금 때(조선조21대임금)의 이야기이다. 임금님의 정비인 정순왕후가 죽고 새로 왕비를 간택할 때이다. 새 중전 후보로 3명의 처녀가 최종 후보에 오른다.

영조임금이 후보 3인들에게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지금으로 말하면 면접이다.

두 명의 처녀가 깔고 앉은 방석에는 자신들의 아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김씨 성을 가진 규수는 방석이 없다.

“너는 어찌하여 방석이 없는고?”

김규수가 대답한다.

“저는 우리 아버지 딸입니다. 딸이 어찌 아버지를 깔고 앉겠습니까? 딸이 어찌 부모의 이름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왕비가 안 되어도 좋습니다. 효녀로 살겠습니다.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방석을 딸이 깔고 앉는 것은 딸로서 도리가 아닙니다.”

영조 임금은 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갸륵하기도 하고 맹랑한 규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 규수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고개 중에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이 드는고?”

강원도에서 온 규수는 대관령 고개라고 대답한다. 경상도에서 온 규수는 추풍령 고개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의 김규수의 대답이다.

“소녀의 생각에는 보릿고개입니다.”
“보릿고개라!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에 세 끼 아니 두 끼, 아니 심지어 한 끼를 채우기가 그 얼마나 난감한가. 이것이 그 어려운 보릿고개이다.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는 고개이고 말고. 해마다 백성들이 넘기 힘든 고개가 아닌가? 모름지기 나라의 국모인 왕후가 되려면 백성이 겪는 그 고통이라는 대명사인 보릿고개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정답이고 말고. 하하하! 맹랑하구만.”

“음, 세 번째 문제는 꽃 중에서 무슨 꽃이 제일인고?”

강원도에서 온 규수는 “목련꽃이 제일입니다.” 경상도에서 온 규수는 “꽃 하면 연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김규수는 “목화꽃 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영조가 물었다.

“목화꽃이라? 목화는 화사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데 왜 목화가 제일이라고 생각 하는고?”
“목화꽃은 다른 꽃들보다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습니다. 목화 꽃이 핀 연후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면에서는 다른 꽃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한 꽃입니다. 백성의 옷감이 됩니다. 예절도 지키고 품격도 살려 줍니다. 추울 때 몸도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을 듣고 영조임금은 생각했다.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는 왕비라도 백성이 헐벗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난해의 성탄 500가정 돕기 성금은 풍성했다. 사랑의 선물이 동남아 5개국을 비롯하여 환태평양 3개국에 전달되었다. 피지에서는 12번째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푸짐한 행사를 했다. 뉴질랜드 내에서는 10개 지역의 어려운 다민족 가정을 섬겼다. 해밀턴과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처음으로 지역의 한인 목회자 가정들을 섬겼다.

세밑에 전해 받은 따뜻한 사랑에 모두들 감동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미얀마는 동남아 10개 연합국가 중에서도 최빈국이다. 현지에서 선교센터를 운영하는 M목사의 전언이다.

사랑의 선물을 광고했더니 어른, 아이들이 200여명이 모여 왔단다. 선물 나눔에 난감했다. 그래서 지역별로 날짜를 정해서 선물 나눔 행사를 어렵게 마쳤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먹거리가 없다. 놀 거리가 없다. 읽을 거리가 없다. 마실 것도 없다. 갈 곳도 없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이면 나가는 도시를 태어난 후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담임목사의 기도제목의 1번이다. 어린이들에게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행사 때마다 간식은 필수이다. 선교센터 안의 생수통은 순식간에 동이 난다.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식혀주는 유일한 친구는 천장에 매달린 녹슨 선풍기란다.

인간사에 제일 큰 설음이 있다면 배고픔과 추위이다. 한국의 50대 이상은 이 춥고 배고픈 시절을 기억한다. 주린 배를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초근목피(풀 뿌리와 나무뿌리)로 연명하던 시절이다.

음력 4월에서 5월초에 보리를 수확한다. 한겨울을 지나면 이 계절까지에는 먹을 게 없다. 오죽했으면 한 많은 보릿고개라고 노래를 부를까?

배고픔을 달래려고 꺾어 불던 보리피리의 추억이 새록새록 인다. 지독히도 저리고 시린 한 많은 시절이었다. 일년 중 최고의 계절은 5월이다.

사랑의 선물이 지구촌의 수많은 철수와 영희들의 보릿고개를 찾아 가려고 한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한 많은 보릿고개를 벗어난 지가 어언 간에 60년이나 된다.

배고파 본 이가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안다. 눈물 젖은 빵을 씹어 본 자가 인생의 참 맛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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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