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테러의 땅,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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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 입구에 비상 식량과 방독면을 둔다. 어린이용 방독면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에 간다고 할 때, 사람들은 항상‘거기 안전한가요?’라고 물었다. 이스라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전쟁과 테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에 입국한 2002년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것이 기정 사실화 되었고, 이라크는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침공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남북이 대치되어있는 한국 상황에서 민방위 훈련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가족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간절히 소원했던 땅이기에 결국 전쟁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에 입국하게 되었다.

사이렌이 울리면 방독면과 비상 식량가방 들고 대피소로 가
이스라엘의 모든 집에는 집 안에 혹은 집 주변에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공시설이 있다. 이스라엘에 입국 후 방공 사이렌이 울리면 2분 안에 방공 대피소로 들어가는 훈련을 가정 먼저 받아야 했다.


방공 대피소

우리 가족은 100년이 넘은 3층 건물에 다른 팀원들과 함께 거주하였는데, 그 건물 바로 옆에 약 3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공 대피소가 있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방독면을 지급받아 비상식량과 함께 가방에 담아 집 문 앞에 항상 배치해 두고, 사이렌이 울리면 아이들을 챙기고 가방을 들고 2분 안에 방공대피소로 들어가야 했다.

훈련은 나름 흥미로웠지만, 훈련과정 중 만약 전쟁이 일어나 사망하게 될 경우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서에 사인해야 할 때 이것이 단지 훈련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특별히 부모로 아이들을 대신해 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이고 두려움이었다. 2003년 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장면을 TV를 통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 보면서 방공호로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라크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았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군 수송열차인가 할 정도로 출퇴근하는 군인들로 붐벼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대를 가야 한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정도. 우리나라 군복무와 조금 다른 것은 군 부대에 거주하며 몇 달 만에 한번씩 휴가를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치 주중에는 군대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집에 오는 것처럼 자주 휴가를 나온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집에 올 때도 군대에서 사용하는 자동소총과 실탄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사복은 입지만 옆에 늘 실탄과 자동소총을 들고 다니기에, 길거리나 식당, 상점 같은 곳에서 총을 든 사복 군인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번은 월요일 아침에 텔아비브로 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민간인은 나 혼자였고 다른 승객 모두 자동소총을 옆에 들고 출근하는 남녀 군인들이었다. 순간 이것이 민간인 열차인지 아니면 군 수송 열차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일상화된 테러의 위협
전쟁의 위협과 더불어 이스라엘에서는 종종 테러가 일어난다. 상점이나 버스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총을 쏘기도 한다.


상점 앞에서도 검문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안전 펜스로 둘려있고 보안요원이 권총을 차고 항상 교문을 지키고 있고, 외부 활동을 할 경우에 반드시 소총을 든 보안요원이 함께 가야만 했다.

상점이나 식당에 들어갈 때도 권총을 소지한 보안요원에게 몸과 가방 검사를 받아야 했고, 심지어 대학 시설에 들어갈 때도 항상 동일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집 밖을 나갈 경우 항상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주인 없는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 그런 가방이 발견되면 경찰에 의해 그 주변이 순식간에 통제되고, 테러대비 로봇이 가방을 특수차량에 옮긴 후 나중에 가방을 폭파시킨다. 폭탄이 들어 있을 수 있는 가방을 누가 가져 가겠는가?

이스라엘에 도착한지 몇 주 지나 한 유대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교회 본당이 2층에 있어, 잠시 기도를 드린 후 가방을 그 자리에 두고 1층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나오는데, 본당에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교회 건물 밖으로 뛰어 나오는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는 가방이 주인도 없이 본당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 가방이었다. 평상시에는 평범하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극도로 긴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내려야 하나요? 계속 타고 가야 하나요?
히브리어를 배우기 위하여 학교에 갈 때마다 버스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버스를 타면 항상 제일 뒤 자리에 몸을 낮춰 앉았다. 혹시라도 앞칸 등받이가 폭탄파편을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혹시 버스에 아랍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탑승하면 순간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주님, 계속 타고 가야 합니까? 아니면 내려야 합니까?”

물론 한번도 내린 적은 없었지만,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한번은 내가 항상 타고 다니는 버스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나 같은 교회에 다니던 미국인 선교사의 딸이 죽음을 맞이하는 크나 큰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2시간 전 내가 탔던 바로 그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평안하게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여전히 테러와 전쟁의 위협은 나에게도 또한 대부분의 유대인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러나 정작 그 분이 태어나 사셨던 땅은 결코 평화의 땅이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그 분이 시작한 평화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편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