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의 익숙한 어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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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라고 하기가 아직은 어색한 2017년. 12월 중순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고 3주의 시간을 보내고 1월 초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었고, 멀리서 온 손님이라며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나를 만나주었다. 약 1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운전대도 잡았고, 자주 다니던 카페, 자주 다니던 바닷가도 가보았다. 오랜만에 방문한 우리 집, 오클랜드는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모든 것들이 참 익숙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오랜만에 도착한 뉴질랜드에서 가장 처음으로 어색하고 다시 한번 신기했던 점은 바로 ‘짐을 두고 자리 비우기’였다. ‘그게 뭐야?’ 라고 물으신다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제대로 된 카페음식이 먹고 싶어 자주 가던 브런치 카페를 찾아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한 할머니가 자리를 잡으셨다. 할머니는 테이블 위에 차 키, 지갑, 휴대폰을 두시고 의자에는 가방을 내려놓으셨다.

잠시 앉으시는가 싶더니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셔서 어딘가로 가시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괜시리 옆에 앉아있던 내가 다 안절부절하면서, 할머니는 지금 내게 무언으로 이 짐을 봐달라고 하시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순간 아차, 싶었다. 여기 뉴질랜드지. 대학생 때도 공공 도서관이건 대학교 도서관이건 그냥 자리에 모든 짐을 두고 화장실을 가기도 하고, 간식을 사러 나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자리에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순간‘나 훔쳐가시오’와 같은 의미가 되어 없어져도 두고 사라진 사람 잘못이 되고, 때론 위험한 물건이라고 오해를 받아 시큐리티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가 자리로 돌아오시고 나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 이후에도 사실 나는 그 어디에도 내 짐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도, 수영하면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홱홱 돌리며 수상한 사람이 없나 확인하곤 했었다. 속으론 그런 내가 웃겨 웃기도 했는데, 내심 뉴질랜드의 사람 사이의 신뢰가 너무나 그리운 시간이기도 했다.

즐거운 나의 집
오랜만에 방문한 우리 동네 그리고 우리 집은 너무도 조용했다. 런던은 높은 아파트들도 많고 주택들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반면에 뉴질랜드는 마당도 넓고 집들 사이사이의 공간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또 어찌나 편하던지. 런던의 플랫문화는 한 집을 많게는 7~8명씩 나누어 쓰게 되는데 한 집에 7, 8명씩 살면 주방은 어찌나 좁은지 두 사람 요리하기도 벅차고, 퇴근 시간 같아져서 모두 거실에서 만나는 날엔 북적북적 사람들로 붐벼서 괜히 쉬지도 못하고 쫓겨나듯 방에만 있게 된다.

굳이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고, 나 또한 이런 플랫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못해도 5명과는 한 집을 쉐어하여 살고 있어 이런 환경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북적거리는 플랫에서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들과 살고 있다 보니 무엇이든 편하게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 갔는데 괜히 이건 먹어도 되는 건지, 이건 써도 되는 건지 싶기도 했고, 나중에는 편할 때 많이 하고 많이 먹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또 동네가 왜 이렇게 조용한 게 어색한지. 이래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는 말이 생긴건가?

식당문화
작년에 쓰던 글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어색함, 바로 식당 문화였다. 전에 썼던 글에선 런던에서의 식당 문화가 어색하다고 썼었는데 이번엔 정 반대였다.

런던에선 자리를 잡아주면 메뉴판을 보고 시킬 것을 고른 후에 메뉴판을 덮어놓으면 와서 주문을 받아준다. 괜히 손을 들고 부르거나 하면 예의 없는 행동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늘 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선 달랐다. 처음에 와서 물어보길래 좀 더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더니 너무 생각 할 시간을 오래 줬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작게 손을 들어서 신호를 주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런던에서는 빈 그릇을 와서 치워준다.

그 때 더 무얼 시키겠냐고 물어보면 거절한 후 ‘Can we have the bill please?’라고 물어보면 계산서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계산서 위에 카드를 올려놓으면 알아서 카드기계를 가져와서 계산을 해준다. 계산하고 나면 언제든지 그냥 일어나서 나가도 상관없다.

처음엔 이게 되려 ‘내가 계산을 안 했다고 생각하고 또 내라 그러면 어떡해?’ 생각하고 겁 먹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인지 되려 뉴질랜드에서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것이 새삼 어색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모두 우르르 일어나서 계산을 하러 가는데 그냥 괜히 돈을 내러 가면서도 밥 먹고 도망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내가 내심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작은 것들이 또 이렇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특유의 여유로움
마지막으로 이 특유의 여유로움은 어색함보다는 부러움이었다. 잠시 내가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오는 상상을 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뉴질랜드에 돌아와서 만난 지인들, 바닷가에서 그냥 내가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모든 사람들까지 모두 가지고 있던 것은 ‘여유로움’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억지로 본인이 짜내는 것도 아닌 그냥 모든 사람들의 시간과 생활 속에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여유로움이 보였다.

물론 출근시간이 아니기도 했고, 여름이어서 더더욱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삶에 만족한 표정이었고 몸짓 또한 그랬다. 몸짓이 여유롭다 하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눈빛 같은 그 모든 것들이 그냥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늘 이렇게 얘기했다. ‘뉴질랜드 사람들한테는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느껴져. 그냥 모든 사람들이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것 같아.’ 옷을 어떻게 입는지, 무슨 브랜드를 입는지 같은 것들은 신경 쓸 겨를도 없고,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한 느낌으로 ‘나는 내 삶의 만족한다’ 라는 느낌.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그래서 따분한거야, 라고도 말할 수 있고, 실제로도 종종 사람들이 따분해서 재미없다라는 얘기를 하곤 하지만(물론 나도 계속 살다 보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내심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여유를 찾고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그 긍정의 힘은 정말 배워야 할 것 같았다.

3주 동안 나는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참 행복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내가 이제 당당하게 “뉴질랜드가 내 나라입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게. 뉴질랜드를 ‘집’이라고 부른다는 것에.

그리고 놀라웠다. 내가 런던이라는 곳을 나의 ‘또 다른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에. 이 두 집 살림(?)이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런던이 좋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뉴질랜드도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 다녀오니 원래도 나던 집 생각이 더 자주 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어색한 익숙함을 기억하며, 런던과 오클랜드라는 두 집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