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 삶보다 상한 삶의 맛이란

2017년의 마지막 달, 어느덧 지나간 해와 새로운 해의 사이에 있습니다.

새로 다가오는 한 해를 계획함과 동시에 올해의 이런저런 것들을 정리하는 한 달.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듯, 한 해 동안 수고한 우리 마음속 구석구석도 되돌아보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문득 든 생각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리고 ‘보는 것이 많은 만큼 그것들과 나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십 대의 초반에는 세상 무서운 것도 없고, 세상보다는 내가 중심 된 치기 어린 삶을 살았다면, 이제 슬슬 세상에는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이 있구나,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위치와 역할은 이러하구나.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보고 배우며 기쁜 일, 겸손함, 성취감도 느꼈지만, 동시에 제 안에 초라함과 질투라는 감정이 함께 들어온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속에 슬그머니 자리 잡고 있는 이 감정.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투 때문에 가장 아파하는 건 제 마음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처라고 하면 흔히 피 흘리는, 찢어진, 눈에 보이는 상처를 생각합니다. 강렬한 빨간색 덕분에 “아프겠다!” 하며 상처 난 자리를 쓰다듬게 되죠. 반면 멍은 별 존재감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을 땐 멍의 존재조차 모르지만, 멍을 한참 동안 지긋하게 누르다 보면 그때야 아픔을 자각하는데요. 그러고 나면 멍든 피부에 미안한 맘도 듭니다. “너 아팠는데 내가 몰랐구나.” 하고요.

멍, 살갗 속에 퍼렇게 맺힌 피. 온데 간 데 갈 곳이 없어 그 자리에 가만히 맺혀 버린 피. 푸르스름하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가끔은 노랗기도 한 멍.

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며들어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한 채 혼자 끙끙댑니다. 지긋하게 누르면 멍의 느낌을 느끼듯, 혼자 가만히 앉아 올해의 지나간 일과 사람들을 돌아보며 질투, 서러움, 화와 초라함을 느끼니, 아 내 마음에도 멍이 들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멍이 들었니, 그렇게 혼자 쓰다듬어 주다가도 결국 말씀과 기도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양선희 작가, <그 인연에 울다- 신비하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거 한쪽만 상한 건데 도려내고 드실래요?
가게 아주머니는 내가 산 성한 복숭아 담은 봉지에 상한 복숭아를 몇 개 더 담아 준다.
먹다 보니 하, 신기하다.
성한 복숭아 보다 상한 복숭아 맛이 더 좋고
덜 상한 복숭아보다 더 상한 복숭아한테서 더 진한 몸 내가 나.
육신이 썩어 넋이 풀리는 날
나도 네게 향기로 확 가고 싶다.

시인은 상한 복숭아를 보며 썩은 육신을 상상합니다. 상한 복숭아가 꼭 상처받은 몸에 비유될 필요는 없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과, 상한 복숭아가 더 맛있고 진한 향기를 낸다면, 멍든 마음은 더 짙은 영혼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복숭아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이 원숙할수록 더 진한 향을 내듯, 성한 삶보다 상한 삶의 맛이 더 진하고 덜 상한 삶보다는 더 상한 삶에서 더 짙은 향이 나겠죠.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알게 된 새로운 감정. 세상 것을 보다 보니 질투하게 되고, 그 질투하는 마음을 성경에 비춰보니 질투하는 제 모습이 더 초라해져서 멍이 두 배로 커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치여서 받은 멍,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또 깨지면서 받는 멍. 멍이 배가 돼서 아프지만 그래도 바라는 바는, 이기심과 자기중심적인 생활에 예민하게 마음 아파하고, 그 죄 때문에 오는 상한 심령이 기도 자리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상한 마음들을 내려놓고 기도할 때, 그 영혼의 짙은 향을 하나님이 맡아주지 않을까요?
우린 종종 눈에 보이지도 않는 멍든 마음 한쪽을 도려내고자 합니다. 눈에 가시인 사람과 아직 껄끄러운 사람,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마음에 상처, 질투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안 만나면 되지. 인연을 끊겠다! 하고요.

반면 시인은 도려내고 버리는 대신에 그 멍든 마음을 먹어 삼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합니다. 먹다 보니 하, 신기하다 하고요. 죄를 지어서 힘들고, 저 사람 때문에 힘들고, 세상에 치여서 힘들고. 그렇게 마음이 상한 만큼 말씀 읽고 기도하게 되고, 기도한 만큼 하나님 앞에서 성숙하게 되고, 그렇게 상한 마음 하나님께 드리다 보니 하, 신기합니다.

2017년 12월, 저에게는 스무 살의 초반을 정리하는 시기 입니다. 스무 살의 마지막 날에는, 10년후의 오늘에는, 또 제 나이 오십이 되어있을 때에는 또 어떤 상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을까요?

한 가지 아는 것은 조금 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하나님이 끌고 가셨을 것이라는 점! 올 한해 돌아보시면서 힘든 마음, 틀어진 관계, 혹은 말 못할 마음에 멍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상한 심령을 혼자 도려내는 대신에 상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더 짙은 향으로, 더 원숙하고 성숙한 과일로 가꿔내시는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편 34편 18절).
The Lord is close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Psalm 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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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