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런던에 온 지도 1년하고 3개월이 되었다. 제법 런던에 적응했고, 이제는 신기했던 모든 것들이 놀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종종 집 생각이 나곤 한다. 아마 조만간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내가 만났던 런던은 참 새롭고 신비했다. 그 안에서 나는 참 많은 것들을 느꼈고 배웠다. 처음엔 어색했던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는 것을 보면서 적응해가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는, 그래서 집이 종종 그리운 그런 것들이 있다. 가족? 친구들? 물론 그러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집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은 매우 단순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참으로 당연했던 것들. 하지만 내가 늘 당연하다고만 받아들이던 이 모든 것들은 타지에서 겪어보니 참으로 감사한 것들이었다. 당연하지만 참 당연하지 않은 것. 뉴질랜드에선 당연시 되었던 것들, 런던에선 참으로 그리운 것들이 되었다.

공기
오클랜드에서 넘어온 날‘내가 런던에 있구나’라고 제일 먼저 느끼게 해준 것이 공기였다. 사방팔방 초록빛 잔디밭에 평화로이 양과 소가 뛰어놀던 오클랜드에서, 영국에서 가장 사람 많은 런던으로 넘어왔으니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 런던에선 뉴질랜드에서의 자연의 공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괜시리 목이 더 칼칼한 것 같고, 더 자주 아픈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한가지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특히 튜브(런던의 지하철)였다.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있는 런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역시나 지하철이다. 처음 런던에 왔을 때 튜브가 신기했던 나는 이리저리 런던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볼 일도 보기 위해 튜브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런던의 튜브는 운행이 된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청소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튜브 탈 때마다 항상 100년 묵은 먼지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기분 탓이겠지만 그래서 그런가 어째 아픈 날 튜브를 타면 더 병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런던에 와서 “참 그리울 게 없어 이런 게 그립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 물이었다. “물이 뭐가 달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종종 희한하게 생각하지만 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봤는데, 내가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물에서 나는 물 냄새와 물 맛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에 무슨 냄새가 있느냐, 맛이 있느냐 하지만 먹을 것은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는 내가 물을 가리니 말 다했다.

나는 물에 대해선 좀 예민하다. 그래서 탄산수를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오클랜드에서 혹시나 정말 목이 마를 때엔 편하게 수돗물을 마시기도 했었다. 무언가 수돗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온전히 냄새 때문이지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런던은 달랐다. 하루는 너무 목이 말라 그냥 수돗물을 마셨는데 너무 수돗물 냄새가 강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런던의 물은 석회수였다. 식당이나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경우, 식당에서 물을 달라고 하면 그냥 물을 원하는지 탄산수를 원하는지 물어보는데 그냥 물을 달라고 하는 경우엔 병에 담긴 물을 주기도 하고, 그런 경우 돈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런던에서 물을 달라고 할 때엔 수돗물 (tap water)을 달라고 얘기해야 한다. 처음엔 석회수인 수돗물을 먹는 게 싫어서 마시지 않거나 음료수를 시켜 마시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수돗물도 익숙하다.

카페, 그리고 커피
나는 개인적으로 커피를 크게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커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남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커피의 기준점도 잘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런던에서 함께 생활하는 오클랜드 지인들은 하나같이 같은 얘기를 한다. 영국의 커피는 정말 맛이 없다고.

오죽하면 맛있는 커피를 찾아 주말마다 카페 탐방을 하거나, 혹은 아예 프랜차이즈 커피가 더 맛있다고들 한다. 사실 카페도 잘 찾아야 하는 것이, 뉴질랜드에선 그래도 눈에 보이는 동네 카페에 들어가면 웬만해선 잘 실패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는 그저 ‘예쁘기만 한’ 카페일 뿐일 수도 있다.

처음에 런던에 와서 방을 알아보러 다닐 적에 하루에 같은 지역에서 방을 두세 개씩 본 적이 있었다. 뷰잉 시간이 잘 맞으면 다행이지만, 웬만해선 그렇게 잘 맞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방 하나를 보고 다음 방을 뷰잉하기까지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이 남기도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면 사실 옆 동네에 놀러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그냥 동네 카페에서 목이나 축이기로 했었다. 때가 여름이었던지라 너무 더워 예쁜 동네 카페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을 선택해 들어가 아이스 초콜릿을 시켰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이스 초콜릿이 내가 생각하던 아이스 초콜릿이 아니었다.

우유에 초코시럽을 넣고 얼음을 넣었는데, 초콜릿 가루라고 넣어준 가루가 달달한 초콜릿 맛이 아니라 베이킹 할 때 쓰는 코코아 파우더 같은 것이 들어 있어 엄청난 쓴맛을 냈던 것이다.

심지어 블렌드 되지 않고 아래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한 모금 빨아 들이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가루가 마구 올라왔다. 결국 그 아이스 초콜릿은 반도 마시지 못한 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엔 시원한 음료수는 차라리 무난한 스타벅스나 코스타(COSTA) 같은 프랜차이즈 점을 택한다. 카페 음식도 마찬가지. 카페 음식은 주로 샌드위치나 토스트가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카페 음식을 먹기 위해 좋은 카페를 찾으면 늘 사람들로 붐벼 오래 줄을 서거나, 웨이팅을 걸어놓고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브런치 먹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뉴질랜드의 예쁘고 맛있는 카페들이 그리운 건 엄연한 사실이다.

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바로 바다이다. 게다가 내가 지내는 런던은 내륙이라 더더욱이 바다를 보기가 힘들다. 오클랜드에선 차로 15분이나 20분이면 바다를 보기가 쉬웠지만, 지금은 바다를 보려면 기차를 타고 1시간에서 2시간을 달려야 하고, 런던 내에서 볼 수 있는 물이라면 황토색 템즈강 뿐이다.

사실 1시간 달려 도착한 바닷가도 딱히 우리가 생각하는 비치 형태의 바닷가는 아니다. 그냥 정말 바다. 부둣가가 있고, 모래사장 대신엔 자갈이 가득해서 내가 원하는 그런 바닷가는 안된다.

바다 냄새도 사실 뉴질랜드의 바다 냄새를 따라잡을 순 없다. 내가 원하던 건 소금기 가득한 코를 찌르는 소금 냄새가 나는 그런 바다였는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선 그런 바다 냄새가 크게 나지 않는 것 같다.

오클랜드에선 날이 좋은 날에 사람들과 고기만 사서 바닷가에서 바비큐를 하기도 했는데, 런던에선 불가능하다. 여름에 고기만 사 들고 가까운 바닷가에서 직접 구워먹을 수 있었던 뉴질랜드와 달리, 집 마당 뒤에서 밖에 즐길 수 없는 바비큐가 내심 아쉬웠다.

런던에서는 날이 좋으면… 템즈강 근처를 산책하는 정도? 템즈강도 종종 물이 줄면 물가로 내려갈 수 있는데 워낙 황토색이다 보니 발을 담그거나 할 엄두는 안 난다. 얼마나 깊은지 깊이도 안보이고 괜시리 색깔 때문에 거부감이 든 달까.

하지만 사실 템즈강도 더러워서 황토색을 띠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템즈강은 바다와 만나는 부분에서 물이 서로 다른 곳으로 역류해 바닥에 있는 흙이 올라오게 되어 모래 색의 황토를 띠게 되는 것이라고 전에 가이드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깨끗한 물임을 알아도 거부감은… 적으면서 보니 정말 생각보다 집을 그립게 만드는 것들은 너무 단순하지만 너무 중요한 것들이다. 또한 뉴질랜드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적고 보니 집이 더욱 그리워진다.

조만간 보자, see you soon .New Zeal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