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 넘지 못한 땅, 스페인과 넘어야 할 땅, 무슬림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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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우디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바르셀로나 성가족 대성당)

종교개혁의 성지를 방문하면서 만나게 되는 특별한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피카소의 열정과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침묵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나라 스페인이다.

먼저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면 경건과 영성, 그리고 기발함을 겸비한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고 하는 건축의 거장 가우디를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 그는 떠났지만 성가족 대성당 공사는 앞으로도 150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어쩌면 바르셀로나는 앞으로도 가우디가 먹여 살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 한 곳은 귀갓길에 들렸던 중동의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종교개혁도 넘지 못한 스페인
종교개혁 당시 그 변화의 바람이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 불었지만, 유독 이 스페인은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테레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영성이 그만큼 대단했다는 거다.

마드리드 옆 아빌라라는 곳에서 태어난 카톨릭의 성인 중 한 명인 테레사 데 세페다 이 아우마다(스페인어: Teresa de Cepeda y Ahumada, 1515년- 1582년)는 그리스도교의 신비가이자 수도원 개혁과 아픈 자들을 치료하고 섬기는데 전념한 인물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영성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탐독할 정도로 그 영향이 컸다.

그렇다면 영성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회개다. 영성은 다른 말로 거룩함인데, 결국 우리는 회개를 통해 거룩해질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쉽게 이 회개를 간과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는 순간,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는 게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가진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죄를 깊이 깨달아 눈물로 용서를 비는 회개의 영성이 생길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그 외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같이 회개를 부르짖고 있다. 사실 믿음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성화도 따지고 보면 회개에서 시작하니까. 따라서 회개가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무슬림의 땅 중동
아랍은 지리적으로 아라비아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아랍인은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이스마엘 후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다윗의 용사들 37명 명단에도 아랍 사람 바아래(Paarai)가 있는 데 그 계보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단순히 아라비아에 살던 사람들을 지칭하던 이 아랍이라는 말은 이후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데 성경 외 아랍 용어의 최초 기록은 주전 853년 앗수르 비문에 나타난다.

앗수르왕 살만에셀 3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왕자들에게 아랍의 긴네브라는 사람이 낙타 1천마리를 주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후 주전 6세기까지 앗수르와 바벨론 비문들에 아랍이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 비문들에서 아랍은 주로 아라비아 북부 시리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을 지칭하였다.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도 아랍은 도시민이 아닌 유목민을 지칭한다(즉 이슬람 주요 도시인 메디나나 메카 주민들은 유목민이 아니므로 아랍민이 아님).

무함마드 사후 아랍어로 무장한 아라비아 이슬람인들의 정복활동 가운데 아랍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역적인 아라비아(아랍)를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북아프리카로 확산된다. 이때 아랍이라는 말은 단순한 유목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복자, 지배자라는 말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또한 도시인들도 아랍이라는 말 속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소아시아 내륙의 작은 소국으로 시작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강력한 이슬람 패권국인 오스만트루크제국(1299-1922)을 세운 지배자들은 아랍을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여겼다. 따라서 아랍의 유목민을 아랍이라 했고, 아라비아어를 쓰는 도시 주민과 농민은 아랍의 자식들이라 불렀다.

아랍에는 왜, 최근 전세계를 큰 충격에 몰아넣은 IS와 같은 반군 테러 단체들이 생겨나고, 계속된 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끊이지 않고 있는 걸까? 그 내부 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뿌리 깊은 이슬람 종파간의 갈등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기독교가 크게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듯, 이슬람도 크게 두 종파, 곧 수니파아 시아파로 나뉘어져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죽은 이후 누가 이슬람 신앙과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가를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게 된 것이다.

마호메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마호메트의 뒤를 이어 칼리프가 이슬람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로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이슬람 내에 권력 투쟁을 야기했고, 이슬람 공동체는 누가 마호메트의 진정한 후계자인가를 두고 두 종파로 나뉘게 되어 지금까지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선교를 위한 적절한 훈련과 준비 없이 열정만 가지고 무슬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지만, 대부분은 극단적인 선교 방법으로 도리어 무슬림들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슬람이 국교인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로의 개종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와 국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슬람 선교가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독교가 이슬람 선교를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이다. 십자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슬람은 파괴되고 없어져야 할 이단이나 사탄의 무리가 아니라,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자들이다.

둘째는 훈련과 준비 없는 극단적인 선교방식이다. 이슬람 선교는 열정만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슬람과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도리어 무슬림들의 갈등과 반발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슬람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창조적인 선교 전략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