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중국은 중국이 아니다, 신장성의 이슬람 문화권

0
134

<사진>키르기르족 마을 잔치가 열린 카라쿨 호수

이 호텔의 경비직원은 타직(Tajik) 민족이다. 로비에서 일하는 매니저는 한족. 호텔 문밖으로 나서면 한족은 찾아보기 힘들고 위구르어를 사용하는 위구르족 사람들이 길거리와 버스에 가득하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키르기즈 민족들이 주민의 98프로를 차지하는 키르기즈족 마을이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대륙’이라 불리는 이유, 바로 이러한 다이나믹한 민족 구성 때문이리라.

중국의 서쪽 끝 카스(카슈가르)에 도착한지 이틀째다. 카스의 첫인상은 정말 팍팍하다. 신장성 제2의 도시라는데 우루무치(Urumqi) 에 비해 황량하기 그지없다.

모래바람으로 인해 하늘도 뿌옇다. 이슬람 문화권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인 이 도시의 인구 80프로는 현지 토착민 위구르족이다. 고대부터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이슬람의 거점도시로 발전한 역사 깊은 무역로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시위와 운동이 종종 일어나는 곳이어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보인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저렴한 호텔은 알고보니 위구르 주민들의 거주지였는데 기차역에서부터 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한족 택시기사는 마치 테러리스트의 소굴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우리를 향해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왜 하필 이 동네에 숙소를 잡았어? 거기가 어딘지나 알고 있어? 가끔 시위가 일어나서 경찰들도 다치는 곳이라고. 흉악한 사람들이 많다고. 호텔 바꿔!”

생판 처음 보는 한족 아저씨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람?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신장 안에서 한족과 위구르족의 갈등과 서로에 대한 경계에 대해서 들어왔기 떄문에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쯤 되니 나는 오히려 위구르족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어졌다. 대체 한족과 얼마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길래 서로 이리 경계를 할 정도란 말인가.

카스의 곳곳을 차로 둘러보기 위해 위구르족 사장이 운영하는 현지 여행사를 찾았다. 하루 동안 나의 개인 기사이자 가이드였던 50대 후반의 위구르족 무슬림 기사 아저씨 토무르는 매년 라마단 금식기간이 되면 철저한 금식과 함께 하루의 다섯 번씩 하는 기도를 꼬박 지켜 행한다고 한다.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동네 목요시장 바자르에 나가보니 수박, 포도, 오디 등 당도 높은 여름 과일들로 가득하다.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를 따라가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신나게 먹었던 고기 꼬치 샤슬릭(이곳에선 ‘카밥’이라 부른다)을 굽고 있는 위구르 청년들이 보인다. 카밥은 만드는 과정을 알면 너무 비위생적이어서 먹기 힘들어진다.

꼬치에 고기를 만지작거리며 쑤셔 넣는 위구르 청년의 손톱 사이에 낀 검은 때를 보자니 마치 자동차 정비를 하다 말고 온 듯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배고픈 자는 그런 것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다.

나는 오랜만에 다시 만난 중앙아시아의 짬뽕 라그만(라미엔) 한 그릇과 함께 양꼬치 카밥 일곱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서 동네 모스크 구경을 갔다.

아주 작고 허름한 모스크였지만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 중인 열심있는 무슬림 남성들 세 명이 보인다. 시내 구경을 마친 뒤 토무르 아저씨의 집에 방문할 수 있었다.

그의 방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 사진이 인쇄된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정확하게 서쪽 메카를 향해 설계된 방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이렇게 열심으로 알라를 찾는 무슬림 아저씨를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위그로족 포무르 아저씨의 방 메카

이튿날이 되어 새로운 운전기사와 함께 카스의 서쪽 끝으로 향하는 카람코람 하이웨이를 지나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관문 카라쿨 호수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에서 40 킬로미터, 파키스탄으로부터 120킬로미터 거리인 이곳은 확실히 중국이 아닌 중앙아시아 분위기가 물씬 난다. 고속도로에는 파키스탄 번호판을 단 화물트럭 한 대가 지나간다.

‘검은 호수’라는 뜻을 가진 카라쿨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포착된 마을 잔치 풍경.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수백명의 키르기즈족 마을 주민들이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호숫가에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에서 자주 먹어보았던 필라프 혹은 오쉬(기름볶음밥)를 먹고 있는 이들은 모두 키르기즈족이었다. 이들이 신성하게 여긴다는 카라쿨 호수를 바라보며 수백 명의 남성 성인들은 호숫가에, 여성들은 뒷편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중국에서 이렇게 많은 키르기즈 족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리라 상상을 못했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해주는 키르기즈 어르신들 절반 이상은 키르기즈의 전통 모자인 깔팍을 쓰고 있다.

호숫가에 위치한 한 키르기즈 청년이 운영하는 가정집 텐트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때마침 무슬림 기도시간이었는데 키르기즈 청년의 큰 형이라고 하는 한 남성이 손님이 들어왔어도 개의치 않고 방 한켠에 매트를 깔고 서쪽 메카를 향해 기도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옆에 누가 있든 개의치 않고 삶의 우선순위를 기도로 삼고 그것을 매일같이 행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기도의 동기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중국 아닌 중국, 내가 알고 있던 중국과 너무나도 다른 신장성의 민족들과 언어, 그리고 이들의 신앙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시안 하이웨이를 통한 복음의 이동이 중국 대륙 안으로부터 더 큰 열방민족을 향해 어떻게 뻗어나갈지 기대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메카를 향해 신실하게 기도를 하는 이곳 무슬림들에게 자극을 받아서인지 나도 숙소에 돌아와 찬양과 기도를 나의 주님께 올려드린다.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