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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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은 어부 출신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의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이 생생하다. 그날 디베랴 호수라고도 불리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디베랴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3번째 공식적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시고 거룩하고 흠 없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로 변화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태초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또한 헬라 종교철학자들에게는 그들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로고스가 무엇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높은 차원의 형이상학적인 접근으로 시작해서 7가지 표적과 7가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헬라인들이 믿는 로고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고차원적인 메시지를 쏟아내다가 마지막 장인 21장에 이르러서는 전혀 뜻밖에도, 요한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뜻한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요한복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요한복음만의 메시지이다.

전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직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행하셨던 일중의 하나였던 갈릴리 호숫가의 사건을 만나면서,‘아, 예수님!’이라는 외마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마태복음28: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갈릴리의 지정하신 산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셨다. 그 열한 제자들 중에서 7명의 제자들이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들이 그물을 다시 던진 이유는 생활비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허기진 배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은 3년 전의 어부생활로 잠시 돌아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하지만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빈 그물이었다. 어부의 경험을 살려서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건만 모두 허탕이었다.

3년간 예수님을 따라서 살았던 삶도 허탕이었고, 다시 돌아와서 어부로서 그물을 던진 것도 허탕이었다. 빈 그물 빈 손이었다. 얼마나 허무했을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꿈꾸었던 메시아 왕국에 대한 환상도 물거품이었고, 혹시라는 기대를 가지고 다시 던졌던 그물도 허탕이었다. 참혹한 마음으로 돌아서려 하고 있었을 때, 해안가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아무 것도 못 잡았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 때에 요한은 물가에서 소리를 지르고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 차렸고, 흥분된 어조로‘저기 주님이 서 계신다!’라고 외쳤다.
이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역사는 반복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밤이 새도록 고기를 못 잡고 있었다. 그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자,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는 대답과 함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이웃에 있는 배까지 불러서 두 배 가득하게 고기를 잡은 경험이 있었다. 그 상황이 다시 갈릴리 호숫가에서 반복된 것이다.

이번에도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다. 다시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역사는 반복된다.

배와 육지 사이의 거리가 약 90미터 정도의 거리였다고 한다. 성질 급한 베드로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 헤엄쳐 달려갔고,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바닷가로 나왔다.

그들이 예수님께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허탕을 치고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을 구우시고 떡을 구우시며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제자들에게 오늘 잡은 고기를 좀 가져오라고 하시니, 그 때 베드로가 그물에 가득 찬 물고기를 세어보니 153마리였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위대한 구원을 완성해 놓으신 상황 속에서 다시 만난 제자들을 위하여 갈릴리 호숫가에서 손수 불을 피우시고, 숯불을 만드시고, 그 위에 물고기를 굽고, 떡을 구우시며,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을 제자들을 위하여 손수 아침 식사 한 끼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상황 속에서 고고한 자리에서 군림하시며 대접을 받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밤새 허탕치고 좌절하며 빈 손, 빈 그물을 들고 돌아오는 제자들을 위하여 따뜻한 아침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땅 끝까지 가서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을 구원하라는 지상 대명령을 내리시기 전에 그 새벽에 그 추위와 굶주림의 상황 속에서 빈 손으로 허탈하게 돌아오고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따뜻한 밥 한 끼부터 준비해주셨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감동이다.

세상 사람들은 조금만 남다른 일을 해내고 나면, 잘난체 하고 큰소리 치고 자기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 인류를 구원하신 위대한 일을 이루신 직후에도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따뜻한 밥 한 끼부터 해결해주셨다. 진한 감동이 있지 아니한가!

예수님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먼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나의 탄식과 나의 눈물과 나의 빈 손, 빈 그물을 염려해주시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주시는 여기 나와 함께 계신, 현재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잠깐 세상에 오신 것으로 끝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지금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눈물과 탄식과 실패를 함께 염려하시며, 나의 빈 손 빈 그물을 가득히 채워주시는 현재의 구세주이시다.

그 옛날 우리의 어머님들은 남편이 먼 길 돌아서 집에 돌아왔을 때, 혹은 아들들이 험한 길 돌아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리 가난해도 따뜻한 밥 한 끼를 꼭 해주셨다. 남자들은 그 따뜻한 밥한 끼를 먹고 힘을 얻어 다시 세상 속에 나가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그 따뜻한 밥 한 끼의 사랑, 그 훈훈한 사랑이 뉴질랜드 이민자 모두의 가슴에 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