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누리며 사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하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착각할 때는 모든 일에 있어서 주인공만 보였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세상은 주인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것이었다.

삶은 신비롭다. 조그만 눈을 새롭게 뜨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이전에는 내가 주인공이 안 되면 분노하고 진 것 같고 패배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엑스트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역할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에 젖어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이 열리니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성경을 볼 때도 주인공만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주변 인물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야곱과 라헬의 사랑 이야기를 볼 때 이전에는 라헬만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레아가 보이고, 두 여종이 보인다. 이전에 레아를 볼 때는 망한 인생 같이 보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자녀 출산의 복을 누렸다. 레아를 통해서 6명의 아들을 출산했는데 그중에는 다윗의 조상 유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레아와 라헬의 시기 질투 때문에 두 여종이 야곱의 셋째 부인, 넷째 부인이 되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산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녀들을 통해서 4 지파가 탄생했다. 그 시대에 여종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린 여인들이었다.

레아는 레아의 복이 있고, 라헬은 라헬의 복이 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6 지파의 조상을 낳았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를 출산할 만한 건강이 허락되지 않았다. 억지로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다. 두 여종은 종이었지만 4 지파의 시조가 되었다. 상대방과 비교하면 시기 질투만 유발된다. 하지만 나에게 주신 복을 생각하면, 현재 주어진 것들에 대한 무한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레아는 시력이 약했고, 라헬은 미모가 뛰어났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건강해서 자녀 출산의 복을 누렸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를 출산할 만한 건강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약점까지도 다 품어 주시고, 12지파를 탄생하게 하셨지만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녀들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면 살 수는 없었을까? 라헬이 남편 사랑으로 만족하면서 살면 안 됐을까?

피가 뜨겁고 욕심이 가득할 때는 그런 삶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데 부분을 보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릴 때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게 없는 것 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 내게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받아 누릴 수 있게 된다. 물 흐르듯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내면의 질서가 생긴다.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있다. 생명보다 귀한 일은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라헬은 오래 사는 것보다는 아들을 원했다. 하나님은 라헬이 자녀를 출산하는 일은 무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신 끝에 라헬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 라헬은 요셉을 낳는 일까지는 건강이 받쳐 주었다. 라헬은 다시 생명을 걸고 두 번째 자녀 출산을 시도한다. 결국 두 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명한다.

하나님은 목숨 걸고 간절히 소망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허락해 주신다. 그런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라헬은 만족했을까! 나라면 만족했을 것 같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 승리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건강을 조심하지만, 건강의 위협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바라고 소원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삶의 의미가 아닐까!

노련한 사람은 현재를 즐길 줄 안다
피가 끓는 청춘일 때에는 미래를 위한 준비와 투자에 연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는 때가 되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65세가 넘으면 항상 끝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앞날을 위해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것보다는 준비할 만큼 준비했으니, 또한 조심할 만큼 조심했으니 이제는 현재의 삶을 누린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되 일에 매이지 않고, 주를 위해서 일하되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삶 자체를 누린다. 아내와 산책을 즐기고, 소찬을 즐기고, 작은 변화를 즐기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너무 시리어스하지 않고 만남 그 자체를 그저 즐긴다.

웃는 일이 많아졌다. 욕심을 내려놓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살게 되니,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이런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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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관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목회 35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다. 3년 전, 조기은퇴 후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현재 Uber Driver로 생계를 해결하며, 글쓰기를 통해 세상,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Guider되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