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셀에서 보내는 편지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망 후, 1955년 독일 중부의 작은 마을 카셀에서 한 예술제가 시작됩니다.

세계 2차 대전 전후로 독일인들에게 깊이 뿌리 박힌 전체주의 나치즘에 대항하여, 예술의 이름으로 시작된 반 나치 운동. Kassel documenta. 도큐멘타, 즉 기록이란 의미로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되어야 할 것들을 사진, 필름, 비디오, 글과 회화, 조각, 행위 예술로 담아낸 예술 행사입니다.

과거 나치 독일 시절, 유대인과 소수 민족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나치에 반대되는 사상을 담은 모든 책들도 사라집니다. 카셀의 중앙 광장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권의 책들이 불태워집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과거 책들이 불타던 그 광장에, 나치가 탄압해온 금지서 10만 권으로 이루어진 신전, the Parthenon of books이 세워집니다.

나치 독일 후 수십 년이 흐른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전체주의의 폭력을 알게 하고 각성하게 하는 설치 미술로, 14회 도큐멘타의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사상의, 종교의, 공동 선을 위해 묵살되는 작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도큐멘타.

5년 주기로 돌아오는 도큐멘타는 그 시대의 논쟁거리를 다루는 예술 작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14회 도큐멘타는 최근 5년간에 일어난 브렉시트, 전쟁과 피난민 문제, 인종차별, 자연보존 문제를 다룬 작품이 다수 소개되었습니다.

유럽 내의 갈등이 심해지는 시기에 올해는 남부 유럽의 중심 그리스 아테네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을 북부 카셀에 그대로 옮겨 다 두었습니다.


카셀 파프테논 신전

피난민들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배에 두고 내려야 했던 물건들을 모은 작품과 함께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bottari”가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인에게 보따리가 가지는 의미는‘소중한 것을 싸는 보자기’라는 해설을 읽으며 bottari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어 보았습니다.

Bottari라는 단어가 가져다 주는 인상은 누군가가 소중한 물건을 정성스레 감싸는 모습, 그 보따리를 소중하게 안고 있을 모습과 누군가에게 수줍게 건네는 모습, 한편으로 한국전쟁 시절 우리의 할머니들이 보따리를 싸는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피난길을 살아내기 위해 필수품을 싸는 모습. 손에 남은 것이라곤 그 보따리 하나. 바리바리 싼 보따리를 품에 안고 피난 가는 모습, 그리고 그마저도 살기 위해 버려야 했던 보따리. 버려진 보따리에서는 머리 빗, 장갑, 사연이 있어 보이는 가락지, 그리고 누군가의 가족사진이 발견됩니다.
보따리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전쟁과 피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 보따리

이렇게 도큐멘타의 방향성은 독일을 넘어 유럽으로, 유럽을 넘어 제3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세계 3대 미술 박람회로 손 꼽히는 도큐멘타는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관람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 종교적 갈등을 알리고 각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약하고, 병든 것들에게 눈길을 돌리고 포용하는 도큐멘타가 크리스천의 가치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예술이, 개인과 우리 차원의 향유와 취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와 세계로까지 영향을 끼치도록 쓰임 받길 바랍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고 관람자이자 평론가인 시대, 장르를 뛰어넘어 크리스천의 가치와 복음이 아름답게 기록되길 바라고, 또 적극적으로 알려지길 바랍니다.

기록은 단순한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기록하는 자와 기록을 읽어내는 자가 기록된 사건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기록이 남아 한편의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철학을 담은 디자인이되고, 사진 자체로의 예술이 됩니다.

우리의 것들이 흐르는 시간 가운데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흐르는 시간 가운데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 나아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자유화되는 세상의 예술과 사상을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디까지 포용하고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우리 것을 어떻게 알리고 선교할 것인지, 계속되는 고민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과거 천주교와 나치처럼 우리의 가치와 다른 것을 불살라버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방법이 운동(movement)으로 번져나가길 바랍니다.

크리스천의 가치와 가치관을 알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크리스천라이프 독자들도, 예술가로서! 주변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기록하시길 바랍니다.

이전 기사허리케인과 모성애
다음 기사샤브캇과 딜쇼다의 혼인 잔치
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