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캇과 딜쇼다의 혼인 잔치

신랑 샤브캇과 신부 딜쇼다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스탄’5개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 (Tashkent)에 도착한 8월 첫째 주는 고온 건조한 이 나라의 여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시즌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의 일과는 동네 시장 탐험으로 시작되었다. 아침 9시쯤 눈을 뜨자 마자 슬리퍼를 신은 채 부스스한 머리로 숙소 가까이 있는 재래시장, 철수 바자르(Chorsu Bazaar)로 걸어가 탄두르에서 갓 구워낸 논(우즈벡 전통 빵)을 하나 사서 입에 베어 물었다.

우즈벡의 상징과도 같은 이 따끈하고 고소한 빵을 먹으며 또 걷다보면 여름향기 가득한 과일시장과 마주한다. 더울수록 당도가 높아지는 달디 단 복숭아와 살구를 검은 봉다리 한가득 사서 손에 들고 말 순대와 양 간이 진열된 육류시장까지 한 바퀴 쭈욱 둘러보고 숙소로 다시 느릿느릿 걸어온다.

타쉬켄트에 짐을 풀고 나흘동안 매일 아침마다 나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기에 이제는 오가는 길목에 인사를 주고받는 상인들이 몇몇 생겼다. 논 빵을 굽는 우즈벡 제빵사 청년은 4일째 매일이 찾아오는 나를 알아봐 주고는 아예 빵을 몇 개 더 얹어주며 차도 대접해준다.

시장 안쪽으로 더 걸어가니 야외 천막에서 우즈벡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타지키스탄 출신의 21세 청년사업가 바부르와 그의 동생 14살 소년 샤합이 느지막하게 개시를 준비하며 매대에 페르가나 (Fergana) 도자기를 진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난 이틀간 오가며 수다를 나눈 탓에 이젠 지나가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앉아서 잠깐 놀다 가라고 한다. 그럼 어김없이 천막 앞에 앉아 그들에게서 타직어와 우즈벡어 몇 단어를 배우고 나는 그들의 영어회화 상대가 되어준다.

시장어귀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는 사장님 알료크와 함께 또 수다를 떤다. 내가 물건을 사든지 안사든지 이미 이 사장님은 관심이 없다. 자신의 한가한 매장에 매일 웃으며 찾아와 말을 걸어주는 이 한국인 사내가 반가운지 오늘은 이런 저런 시장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어제 매출내역이 기록된 공책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아침 시장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는 흥정택시를 타고 또 다른 재래 시장으로 향한다. 사람구경, 음식구경, 그리고 상인들과의 대화는 또 다른 이웃 상인들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세련되고 모던한 쇼핑몰과 백화점보다는 나는 여전히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어수선한 재래시장이 더 편하고 좋다.

장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익숙한 길거리에 오늘은 유난히도 사람들이 많이 보이길래 호기심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건물 가까이로 가보았다.

삐까번쩍한 검은색 리무진이 한대 서있었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큰 건물 안으로 입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혼식이 열리는 예식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귀한 볼거리를 볼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에 예식장 바깥 돌바닥에 편히 앉아 혼인잔치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식장 정문 바깥 정중앙에 주차된 리무진의 뒷자석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우즈벡 전통복장의 중년 여성과 나란히 앉아있었다. 이제 막 도착한 여성 하객들은 살짝 열린 리무진 창문 사이로 신부와 신부 어머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예식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우즈벡 결혼은 어떤 모습으로 치러지는지 무척 궁금했기에 조금 더 가까이 리무진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보려 했으나 순간 덩치 좋은 한 건장한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온 뉘신지?”
“아, 저… 저기 숙소에 머물고 있는 지나가는 여행자인데, 동네 잔치가 열리는 것 같아서 구경 중이라오”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자 경계 모드에서 싱글벙글 환영 모드로 태세를 전환한 그는 잠깐 기다리라며 멋진 정장 차림의 신사 한 명을 내 앞으로 모셔왔다.

어눌한 영어와 러시아어를 섞어 환영의 인사를 건넨 이 신사는 다름 아닌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의 친형, 사이두마(Sayidumar)였다.

사이두마는 자신의 동생이 결혼하는 이 기쁜 날에 멀리서 찾아와 준 손님이 함께 자리를 빛내주길 원한다면서 밖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예식장 안으로 들어와 끝까지 결혼식을 즐기고 가라며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누가 봐도 배낭여행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허름한 옷차림 (반바지, 반팔 티, 등산화, 두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계가족인 형의 안내를 받으며 예식장으로 당당하게 입장하는 내 자신의 모양새가 우습긴 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여행자의 특권이 아닌가! 살면서 언제 이런 행색을 하고 결혼식에 참석해볼 수 있을까!

예식장의 가장 앞자리에 위치한 신랑 친구들 테이블에 나를 착석시켜준 사이두마는 다시금 환한 미소와 함께 차려진 잔치상과 결혼식의 모든 순서를 즐겨주길 바란다고 말하고는 신랑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다.

20대 중반인 신랑의 학교 동창들이 대부분인 신랑 친구 테이블에서 나는 그날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고야 말았다. 모든 친구들이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이 시청했다는 한류 드라마를 나열하며‘송혜교’와‘이영애’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어떤 친구는 ‘장보고’의 활 쏘는 시늉을 해 보이기도 한다.

풍성하게 차려진 잔치상의 음식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나니 이제야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되려나보다. 6시 쯤 시작된 결혼식은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는 매우 짧은 편에 속하는 모던한 결혼식이라고 한다. 식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흥겨운 음악에 맞춰 신랑신부와 하객 모두가 춤을 추는 댄스타임!

남녀노소 모두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각양각색의 스타일로 춤솜씨를 뽐내는데 신랑의 친구들이 돌아가며 댄스 플로어의 중앙에서 춤 자랑을 한다.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흥겹게 구경하고 있던 나 또한 신랑 친구들의 등에 밀려 댄스 플로어 정중앙으로 초대되었다.

타고난 박치인 나지만 이런 흥겨운 분위기에서라면 어떤 춤이라도 용서가 될 듯했다. 신랑 친구들의 환호속에 신나게 코리안 막춤을 선보이고는 땀을 훔치며 자리에 앉았다.

술을 금기하는 이슬람 종교 덕분에 술 한 모금 없이도 이들은 3시간이 넘도록 지치지 않고 춤을 추며 신나게 결혼식을 즐기는 모습 속에서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우즈벡 민족들의 진면모를 볼 수 있었다.

신랑 샤브캇과 신부 딜쇼다에게 한글 친필로 축복의 메시지를 써서 선물을 해주고는 이 기쁜 날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진심담긴 감사를 전했다. 신랑 친구들 테이블로 돌아오자 한 친구가 내게 청첩장을 건네주며 다음 주에 열릴 자신의 결혼식에도 꼭 와달라고 초대를 해주었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허름한 여행자로서 이렇게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다니, 놀랍고 신나는 일이다! 춤추는 것도 지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신랑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를 초대해준 신랑의 형 사이두마가 바깥까지 배웅을 해주며 행여라도 잃어버린 물건은 없는지, 음식은 맛있었는지, 결혼식이 즐거웠는지 물어봐준다.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생긋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선한 눈망울을 가진 사이두마에게 나도 똑같이 고개 숙여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의 혼인잔치 날 이 추억을 떠올리며 예식장밖을 어슬렁거리는 우즈벡 여행자 청년이 있다면 꼭 초대할 것이다!

“드루 오세요~ 우즈벡에서 귀한 발걸음 해주신 귀빈 여행자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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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루
순한글 '두루'는 본명 임명현의 키위 이름 'Drew'의 또 다른 이름, 메시대학교 졸업, 리테일 매니저, 오클랜드 사랑의 교회 청년, 뉴질랜드 내 무슬림을 섬기는 FFF(Friends of Friends Fellowship)에서 활동하며, 중동과 아시아를 두루두루 여행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