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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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헤럴드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한 가지 읽었습니다. 전국에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질랜드 포스트(New Zealand Post)에서 내년 1월부터 기존의 빠른 우편 서비스(Fast Post service)를 중단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우편(Standard Post)은 배달을 위해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빠른 우편은 급하거나 중요한 편지, 서류, 엽서 등을 다음 날 수신자가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입니다. 편지를 넣는 우체통에 가면 편지를 넣는 구멍이 보통 우편과 빠른 우편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현재 전체 우편물 중에서 단지 1%만이 빠른 우편 서비스를 통해서 배달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23%가 감소되었습니다. 뉴질랜드 포스트는 전체 우편물 물량이 매년 감소하는 것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보통 우편 서비스는 계속 제공이 될 계획입니다.

뉴질랜드 포스트는 빠른 우편 서비스를 종료함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기존 직원들이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들을 탐색 중입니다. 편지의 양은 줄었지만 소포의 양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즈니스 고객들을 위한 오클랜드,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간의 새로운 서비스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편물이 그 이전의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그 결과 뉴질랜드 포스트는 2013년부터 약 이 천 여명의 직원들을 줄여야 했습니다. 여하튼 내년부터 빠른 시일 내에 우편물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기면 아마도 뉴질랜드 포스트가 아니라 쿠리어 서비스(courier service)를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1998년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자주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물론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쓴 편지들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뉴질랜드에 왔지만 처음엔 아무 연고없는 이곳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를 격려하기 위해 한국의 친구들, 교인들, 동역자들이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매일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우체부가 편지를 배달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있는 우편함에 나가 편지가 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편지봉투를 열어보는 손길도 떨렸고, 편지를 읽어내려 갈 때면 눈에서도 마음에서도 감동의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편지를 받으면 바로 답장을 썼습니다. 한국에 있는 분이 그 답장을 받으려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렸기에 참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분의 답장을 다시 받으려면 거의 2주가 넘는 시간을 오직 기다림으로 채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무엇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이제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어느 순간 손 편지에서 이메일로 바뀌더니 이제는 이메일 보다는 문자 서비스나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편지지에 손으로 사연을 적어내려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핸드폰 단말기 화면 속에 있는 자판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면 쉽게 끝이 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점점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문명은 더 발전했고, 모든 것이 더 빨라졌으며, 삶은 더 편리해졌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더 황폐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저는 기다림이라는 삶의 여백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불같이 타오르는 신앙은 오히려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뒤돌아볼 영적인 여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잠잠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내 영혼의 여백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늘의 것으로 채워갑니다. 그래야만 기다림의 끝에서 다시 생명으로 충만한 우리 영혼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