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아주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하나 본 적이 있다. 보통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멸종위기의 동물들이나 심각한 환경문제 등의 나름대로 널찍한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가 그 날 본 그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한국의 한 연예인의 인기비결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소소한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일종의 가벼운 휴먼다큐의 일종이었다.
실제 프로그램의 내용은 연예부 기자들이 몇 명 나와서 요즘 예능프로그램의 대표적 사회자들 중의 한 사람인 개그맨 유재석씨에 대하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한마디로 유재석씨가 요즘 왜 인기가 있는가를 연예부 기자들의 눈을 통해 밝혀 내겠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기자들은 유재석씨의 인기에 대하여 오히려 부정적인 의심의 의문들을 쏟아 냈다. 유재석씨는 다른 개그맨들에 비해 그다지 뛰어나게 웃긴(?)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또 사회(MC)를 보는 기술도 여느 진행자들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닌데 그가 왜 인기가 있느냐는 의문들을 기자들은 쏟아냈다.
심지어 유재석씨의 인기는 주변에 제 2인자라고 불리는 박명수씨 등의 캐릭터를 짓밟고(?) 올라서는 파렴치한 인기방법이 그 비결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아니 도대체 세상에 오죽 방송 소재가 없으면 열심히 살고 있는 연예인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을까?’
어이없는 프로그램의 소재와 연예부 기자들의 불평들을 들으며 내 마음이 점점 지루해져 갈 무렵이었다. 연예부 기자들의 대화는 프로그램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아주 재미있는 의외의 결론을 향해 반전을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유재석씨가 왜? 인기가 있고 그가 하는 예능프로그램들은 왜? 대부분 흥행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연예인으로서의 어떤 재능이나 노하우가 아니었다. 뜬금없게도 유재석씨의 인간성이었다. 촬영 도중 외상으로 사먹은 아이스크림 값을 갚기 위해 친히(?) 그는 동네 작은 구멍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니 한사코 돈을 안받겠다는 주인과 실랑이를 하다 돌아간 그는 몇 분 후에 결국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그는 케이크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서야 겨우 돌아갔다. 그 구멍가게 주인 아저씨는 유명 연예인 유재석씨의 그 친근하게 다가오는 따뜻한 마음을 거의 찬양 수준으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의 그 따뜻한 마음은 유명 스타의 쇼가 아닌 듯 했다. 그는 이미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던 무명시절부터 부상당한 작은 강아지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처 입은 강아지 한 마리를 끌어안고는 동물병원으로 찾아와 자신의 가진 돈을 다 털어 강아지를 치료해 달라 맡겼던 사연이 그때 강아지를 치료해준 동물병원 수의사에 의해 증언되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동료 연예인들이나 제작진 중에서 어려울 때 유재석씨의 도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수해가 나거나 재해를 입은 곳이면 어김없이 그는 기부를 했다. 연예부 기자들이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유재석은 예능 사회자로서의 유재석이 아니고 사실 따뜻한 인간 유재석이었다.
그렇게 그 다큐멘터리는 정말 의외의 결론을 찾아 흘러가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프로의 유명사회자, 국민 MC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재석씨가 가지고 있던 인기의 진짜 비밀은 그의 방송기술이나 개그실력이 아니라 그의 따뜻한 인간성이라는 결론은 정말 엉뚱하게도 그리스도인인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전혀 교회와 상관없어 보이는 개그맨 유재석씨의 인기비결은 커다란 거울이 되어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교회들이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옷 매무새를 고쳐 입어야 할 커다란 거울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 길도 많이 막혔다는 것이 교계 안 밖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사회고발 프로그램들은 해마다 서로 앞다투어 교회와 목회자의 비리와 사건들을 다룬다. 아마 해마다 4-5편 정도의 교회관련 또는 목회자관련 문제들이 방송되는 것 같다.
교회 내 성추행, 재정비리, 폭력사건, 사기사건, 심지어는 목사와 성도들이 관여된 살인사건까지 그 내용과 정도도 지극히 다양하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이런 부정적인 교회의 모습을 본 세상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목소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내가 맞고 너희가 틀리다” 라는 고집과 자기 합리화만 가지고 풀어 낼수가 없다. 이제 교회는 세상을 향한 확성기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복음에 관심 갖기 힘든 바쁘고 복잡한 이 시대의 사람들이 화들짝 놀랄 만큼 크게 울리는 확성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유재석씨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따뜻한 마음씨로 동료들과 제작진과 심지어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린 유재석씨의 그 따뜻한 마음은 이 시대를 울리는 큰 확성기와 같다. 교회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이런 확성기를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굳게 닫혀진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열릴만한 선한 모습을 오늘날 교회들은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
선교적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바로“성육신”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고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복음과 사랑을 전달해 주셨던 것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본받아 세상 속에서 복음과 사랑을 전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차갑게 닫혀버린 세상의 마음을 녹이고 열어젖힐 확성기는 예수님의 겸손하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다. 어쩌면 교회는 이 예수님의 마음을 예수님의 방법인 성육신적 삶으로 전달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칼과 창을 들고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겸손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 그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의 손을 잡아주셨다는 사실을 우리 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선교적 공동체는 바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이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교회이다. 성도들이 그 따뜻한 마음을 품고 세상속으로 파송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선교적 공동체야 말로 등돌린 세상이 다시 그리스도를 보게 만드는 이 책임을 다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얼마 전 웰링턴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몇 명의 청년들과 첫 모임을 가졌다. 주일날 예배당에 나와 예배만 드리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란 생각들을 정리하고 직접 삶 속에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녹이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문을 열어줄 이 선교적 비전을 나눌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비록 적은 숫자가 모였지만 그들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터에서 믿지 않는 동료들이 우리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만나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