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서 바라본 로마
개인적으로 종교개혁과 교회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 다니는 것은 힘든 여정이지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신앙을 일깨우기에는 더없이 중요한 기회인 것은 틀림없다.
늘 도사리는 돌발 변수에는 순간순간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지를 갖게 하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유럽은 조상들 덕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화 유산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들을 보면서 저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저들도 분명 이 현장들을 보면서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을까? 라는 질문 앞에 섰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는 믿음 때문에 설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던 시기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전 마을에는 성도들의 영적인 만족을 위하여 교회당들이 즐비하였다.
이때만큼 종교적인 시대는 없었다. 그런 시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 당시의 교회들이 고백하던 신앙과 생활이 기독교적이냐는 점이다.
비록 그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른 신앙, 성경이 제시하는 바른 예배가 생활에서 벗어나 있다면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들은 개혁되어야 했고,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은 인간에 의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이 당에 그의 아들을 보내시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셨던 것처럼 종교개혁을 통하여 그의 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수많은 준비를 하였다.
당시 교황청은 유럽의 1/3을 소유했고, 독일의 총생산 40%를 가져갔기에 독일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인쇄술의 발명
1450년 쿠텐베르크에 의해 인쇄기 발명으로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다. 루터의 95 항의 문들이 2주안에 유럽전역에 퍼질 정도의 파급력을 보고 슈피츠는 인쇄술이야 말로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고, 요한 폭스는 그의 책 순교기에 이렇게 언급했다.
“인쇄술로 인하여 올바른 지식과 분별하는 빛이 훌륭한 양식 속에 자리잡게 되며, 어두움은 물러가고 무식은 드러나며 오류로부터 진리가, 미신으로부터 참된 종교가 구별되었다.”
종교적 배경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다 변화하였는데 오직 로마 교황청만 거부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베드로 대성당 건축자금 확보를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고 그 자금으로 건물은 유럽의 어느 성당보다도 그 웅장함이나 화려 함에서는 압도적으로 변해갔다.
로마교회의 탐욕을 빗대어 세상사람들은“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라틴어(Radix Omnium Malomum Avaritia)의 첫 글자를 따서 중세교회의 중심지였던 이른바 거룩한 도시 로마를 탐욕의 도시 ‘ROMA’라고 풍자하고 있다.
거기엔 다양한 선화와 성인상, 그들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장식했다.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성실과 성화로 경건의 주입이 지나쳐 우상숭배로 이어졌다.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질문했던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나는 네가 떠난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달리려 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