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 사이의 먼나라 이웃나라 사람들

90년대 수많은 한국 어린이들에게 넓고 큰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여행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던 국민 만화책이 있었으니 바로 이원복 만화가의 작품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교육서적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어린이였던 나 또한 만화책 전권을 몇 번씩이나 보고 또 보고 ‘언젠가는 이 나라들을 꼭 가보리라’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그때 읽었던 각 나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진 문구가 있다면 단연 만화책 제목 그 자체 ‘먼나라 이웃나라’임에 틀림없다. 당시엔 만화에 나오는 모든 나라들이 정말 머~얼게만 느껴졌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 먼나라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그들의 생김새를 유심히 지켜봤던 기억은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년 미국 월드컵 중계를 티브이로 시청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20여 년을 훌쩍 건너 뛰어보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대륙에 걸친 22개국을 여행했던 2015-2016년 당시, 90년대 초반 손때 묻은 만화책과 둥근 지구본을 번갈아 확인해가며 먼나라 이웃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나날이 키워가던 서울 토박이 꼬마소년은 어느새 오세아니아 대륙의 뉴질랜드라는 나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공부를 영어로 마치고 20여 개국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세계여행하기에 가장 편리한 여권 중 하나인 대한민국 여권을 한손에 쥐고, 또 한 손에는‘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 전권보다 훨씬 더 많은 세계정보와 지식이 담겨있는 위대한 현대인류의 유산 ‘스마트폰’을 들고 있노라면, 세계 그 어느 곳에 남겨져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여권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필수 소지품은 바로 세상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는 이 손바닥 만한 아이폰이었다.

국경을 넘어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어디에 잡아야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믿는 구석, 아이폰에 설치되어 있는 배낭여행자 숙박 어플리케이션이 있기 때문에(Hostelworld)!

말이 통하지 않는 택시기사와의 흥정에서 바가지요금을 모면하고 목적지를 멀리 돌아가고 있진 않은지 예의주시하며 기사에게 눈치를 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믿는 구석, 구글 GPS가 있기 때문에!

황당할 정도로 길치인 내가 자신있게 새로운 도시, 마을, 골목골목을 망설임없이 누비며 걷고 또 걸어다닐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인터넷(3G/4G) 없이도 왠만한 동네 길거리 정보를 검색하고 추적할 수 있는 오프라인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있기 때문에(maps.me)!

2주가 멀다 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국제화폐와 환율을 접하면서도 머리가 깨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환율계산과 지출내역 기록이 가능한 세계여행 가계부 어플리케이션이 있기 때문에 (Trail Wallet)!

이란(파르시), 혹은 터키(터키시) 등 생전 처음 접해보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헬로” 와 “땡큐” 같은 기본적인 현지회화도 모르는 상태로 입국하더라도 겁먹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미리 다운로드만 받아놓으면 기본적인 통역이 가능한 구글 번역기와 전세계 웬만한 언어와 유용한 여행회화 문장을 현지문자, 영어발음과 더불어 오디오 스피킹 파일까지 쫘악~ 나열해놓은 다양한 여행언어학습 어플리케이션이 있기 때문에!

위에 나열한 어플리케이션 외에도 여행을 알차게 만들어 준 스마트폰의 가장 기특한 역할은 바로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다.

한번은 인스타그램(Instagram) 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한 저명한 일러스트 디자이너가 개인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세계여행중인 나에게 부탁이 있다며 자신의 일러스트 디자인이 담긴 엽서 몇장을 주더니 여행을 하며 세계적인 랜드마크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 공유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마다하지 않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요르단의 페트라 등 세계 문화 유산 앞에서 그 친구의 엽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어 공유해줬던 적도 있다.

그는 내게 몇 번이고 고맙고 또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알고보니 카자흐스탄 국내외에서 수만 명의 팔로워를 몰고 다니는 인기 인스타그래머였다.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에서는 키부츠(유대인 집단농장)에 거주하는 그루지아계(Georgia) 유대인 가정에 초대받아 이틀 밤을 머물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배도 마음도 풍족하게 대접받았던 추억이 있다.

불가리아의 제2의 도시라곤 하지만 아직도 이름이 생소한 플로브디프(Plovdiv)란 도시에서 눈 내리는 추운 겨울 하룻밤을 마치 오랜 친구 집에서 편히 머물다가 간듯한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전세계 배낭여행자 문화 및 숙박 공유 네트워크 플랫폼인 카우치서핑(Courchsurfing)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추억이다.

한국, 뉴질랜드, 중국, 대만 곳곳에 흩어져있던 가족, 친지들과 긴밀하게 소통의 끈이 되어주던 카톡은 말할 것도 없다. 매일같이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사진과 추억을 글로 나누며 1년이 넘는 여정을 마치고 오클랜드로 돌아온 나에게 교회 친구들이 말했다.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들 안부보다 네 소식을 더 자주 보고 들었다. 야, 페북이 좋긴 좋아!”

물론 스마트폰의 단점도 상당하다. 한번 의지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나 자신보다, 사람들보다 더 의지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세상과 사람을 연결시켜준다는 핑계로 사용했던 스마트폰으로 인해 오히려 현지사람들과 얼굴을 대면할 (face to face) 의사소통이 줄어들 확률도 적지 않다.

돌이켜보니 여행자 신분으로 현지 심카드 구매가 불가능했던 이란에서 오히려 행인들에게 길을 묻다가 점심식사까지 함께하며 친구가 되기도 했고, 스마트하지 않게 비효율적으로 돌아다니다가 길을 헤매던 도중 예기치 못한 동네 어귀에서 벌어지고 있던 결혼식 잔치에 초대 받았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추억, 모두 스마트폰 없이 ‘무작정’ 돌아다니다 마주했던 뜻밖의 선물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먼나라 이웃나라’사람들과 함께 더이상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숨쉬며 또 오늘을 살고 있다. 손가락 하나 사이에 둔 거리에서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친구가 텔레그램(Telegram)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문자를 보내온다. 그리고 스카이스캐너(세계항공권 검색 어플리케이션)를 통해 다음 여행지 항공권을 검색중인 나를 발견한다.

과연, 2017년에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의지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하는게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뜻밖의 선물과 함께 답답함도 동시에 가져다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