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기초가 중요하다

송재흥목사<오엠국제선교회>

“선교가 무엇인가?” 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를 정의하는 그 근거와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갖는 많은 오해가 선교는 좀더 문화적으로 발달된 나라에서 파송 되어져 복음을 전하거나 이를 통한 가시적인 활동이나 결과들을 선교로 정의 하는 경우이다.

또는 자국의 교회나 선교단체로부터 파송을 받아서 파송받은 단체가 이루기를 원하는 것을 위하여 일하는 것으로 이해 될 때이다.

한 곳에 복음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에 그 힘으로 복음화가 되지 않은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 순차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에 대한 이해의 혼돈이 우리에게 있을 때 실질적으로 선교현장에서는 선교의 실천적 요소들이 잘못되어질 수 있다. 또한, 사역의 결과물들이 전혀 선교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라는 개념이 폭넓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짐에 따른 결과이다.

우리는 선교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가 무엇인지 그 기초부터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주적인 동기
구약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으로 동일시 한다. 창세기1:28, 창세기9:1절의 언약은 창세기12:1-3절의 언약과 연결선상으로 중요한 신학적인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축복받기를 원하시고,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대상이심을 선포하고 계시고, 경배의 대상이 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교를 진행하시는 동기, 즉 한 분이시며,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창조세계 모든 곳에서 알려지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선포된 것처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니라”(이사야11:9).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또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인 것이다.

상황적인 동기
창세기 10장의 모든 민족들의 목록처럼, 지역적인 분리, 문화적인 분리, 언어의 분리의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언약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 언약의 밖에 있는 수많은 민족과 언어권이 존재하게 되어, 선교는 문화적, 언어적, 영적 장벽을 뛰어넘어 이 장벽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요한복음3:16)를 증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28:18-20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족속, 모든 민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을 보내시는 일((누가복음10:1-3)을 통해서 그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선교사적 동기
선교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속과 축복의 섭리를 이해하고 이를 이 땅에서 실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마치 구약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창세기 3:1-12)을 받고 애굽땅으로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내듯,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창세기12:1-3)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셔서(이사야49:6) 온 세상을 향한 빛이 되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 명령하셨던 예수님처럼(마태복음28:18-20), 하나님이 사울이라는 청년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던 것처럼(사도행전9:15), 모든 선교사들에게 분명한 영적 경험이 있다면 그들 모두에게는 세계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소명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가장 핵심적인 구원의 요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아버지가 나를 보냄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리라고 말씀 하신다(요한복음20:21).

선교(Mission)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다” 라는 뜻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 “mittos” 에서 왔다. 즉, 선교의 가장 원형적 모형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고 그 실천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지금도 그 일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1:8절의 아주 분명한 명령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우리는 예루살렘에 머무르는, 즉 모이는 교회 형태에 고착되었음을 한국교회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성경적인 선교신학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었음을 본다.

모든 교회는 선교적 교회이어야
지난 2년간 한국교회의 선교사 증가율이 제로 퍼센트에 머물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의 정치, 경제상황과 맞물리고 한국교회의 정체상태로 인한 결과일 것이다.

선교를 성서적, 신학적 토대가 아니라 교회성장의 한 결과론적인 측면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또는 한국교회의 교세를 반영하여 우리교회가 이 정도의 크기인데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있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교지에서도 서구중심의 선교에서 나타났던 양적, 물질적 선교 패러다임인 프로젝트 중심의 사역이 한국인에 의한 선교에서도 반복되는 폐단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서서히 한국선교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가 올바른 성경적인 기초를 토대로 한 올바른 선교신학을 확립해야 한다.

로잔 케이프타운서약에서 선언한 것처럼 “우리가 선교를 하는 가장 위대한 동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교를 진행하시는 동기와 동일하다. 즉, 한 분이시며,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모든 곳에서 알려지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또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선교적인 것처럼, 선교적인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모든 교회는 선교적인 교회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