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난민촌에 가 작은 도움이라도 줘

“잘지내지 두루? 오늘 아침에 진짜 큰 배가 들어왔어! 무려 205명이나 태운 배였다고! 어린이들도 많았어. 우리가 묵었던 숙소 바로 코앞에 있는 해변에 말이야! 이제 막 그들을 캠프로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야!”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떠난지 24시간도 채 안되어 팀리더 에브라함이 내게 보내온 흥분된 메시지였다.

2016년 1월 11일, 레스보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독일 뮌헨을 지나 영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던 나로서는 205명의 난민들을 태운 큰 배를 현장에서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하루 차이로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 고귀한 생명들이 안전하게 에게해를 건너 유럽땅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등 중동 전역에서 전쟁과 테러의 위협을 피해 고무보트에 몸 하나 달랑 싣고 목숨을 건 항해길에 오른 수많은 난민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지난 3일간 터키와 그리스를 잇는 에게해를 항해하는 여섯대의 고무보트를 초조한 마음으로 내 눈으로 목격하였고, 무사히 육지에 닿은 그들이 임시 캠프로 도착했을 때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BBC, 알자지라 뉴스를 통해서만 접하는‘또 하나의 지구 저편 안타까운 소식’이 아닌, 나의 두 눈과 마음에 담겨져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한사람 한 사람의 부르짖음이자 손짓이 되었다.

중앙아시아를 여행중이던 9월말 경, 사상최대의 난민 유입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유럽발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찜찜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왠지 나의 유럽여행 일정을 바꿔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은 터키를 지나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행적을 따라 순례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현재, 레스보스)로 가서”(사도행전 20:14).

‘레스보스, 레스보스, 레스보스 (Lesvos)’

수백수천 명의 난민들이 매일같이 물려들고 있다는 그리스 동부 에게해에 위치한 이 섬의 이름이 국제뉴스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르내리고 있었고, 파도에 떠밀려와 해안가에 얼굴을 묻은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전세계를 비통함에 빠뜨린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저런 안타까운 일이 또…’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울림이었다.

“그래서 너에게도 내 맘을 나눠주지 않았니? 잠깐이라도 그들에게 가면 되지 않겠니?”

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사도바울 성지순례를 포기해야 하는 아쉬운 맘이 계속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를 잘 설득시키는 수 밖에…

‘야, 이 세상 이미 떠나 젤 좋은 곳에서 영원히 살고있는 사도바울도 좋지만, 지금 오늘 살기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치는 그들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 여기까지 왔는데 외면하고 가려고? 에이, 설마~’

‘알았어 임마, 바닷가 청소를 돕던, 박스를 나르던 뭐라도 하러 갈께. 에잇… 여기까지 왔는데…”(그렇다. 나는 종종 스스로와 대화한다.)

터키 여정을 마친 뒤 불가리아에서 버스를 타고 17시간만에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 다시 배를 타고 18시간이 지나서야 유럽 난민 하이웨이의 최전선인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다.

‘바이 바이~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신전~ 흑흑…’

섬에서 활동중인 봉사자들의 현장 이해를 돕기 위한 기본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저녁 해변을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민대란이 시작되기 전엔 관광객들이 붐비던 잘나가는 휴양지 섬이었던 이곳, 여기 저기 버려진 고무보트와 주황색 구명조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10년 전 군산 미군기지에 파병되어 한국물을 좀 먹었던 전직 미국공군 에브라함 아저씨와 같은 조가 되어 봉고차를 타고 창고와 캠프를 오가며 구호물품과 비상간식을 실어날랐다.

이제 막 도착한 두 대의 보트에서 내린 10여명의 난민들을 맞이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대게 이들이 타고오는 고무보트는 15명이 정원인데 반해 실제로는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50여명이 발디딜 틈 조차 없을 정도로 보트를 가득 메운채 항해를 한다.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이다.

봉사자들 중 대부분이 20-30대의 바쁘고 할 일 많은 대학생, 사회인들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대로된 체계와 조직을 갖춘 NGO도 아니었고, 구호사역을 위해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아닌 지극히도 평범한 대학생들과 사회인들이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6개월씩 휴가를 내고, 사직을 하고, 방학을 헌납하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 능력 따라 적성 따라 맡겨진 일에 묵묵히 땀흘리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따뜻한 지구온난화 현상이라면 더, 더 빠르게 가속화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스보스섬을 떠나는 마지막 날, 이름 모를 난민 꼬마아이가 입고 바다를 함께 건너왔을 어린이용 구명조끼 하나를 주워들고 내 배낭에 질끈 묶었다. 이후 내가 가는 모든 도시와 나라를 이 꼬마친구의 조끼를 등에 업고 여행했다.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한 생명의 소중함을, 내게 주어진 지극히 당연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평화로운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축복받은 자로서 난민이슈를 바라보며 방관자가 아닌 작은 책임감이라도 느끼며 무엇이라도 해야함을 기억하기 위해서.

헤롯왕의 명령으로 인해 죽임당할 뻔 했던 무고한 아기예수도, 하나뿐인 아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로 피난길에 올랐던 아버지 요셉도, 두려움 가운데 아이를 안고 울면서 걷고 또 걸어야 했을 어머니 마리아도 모두 목숨을 건 항해를 해야만 했던 그 시대의 레스보스 난민이었다. 바울삼촌, 천국에서 봅시다! 우리들은 이 땅의 레스보스를 돌아볼께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참고 영상
CGNTV 제작 다큐 “복음의 통로, 유럽 난민 하이웨이”(2016년1월 8일 방영) http://www.cgntv.net/player/home.cgn?vid=178723&pid=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