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치료,약을 먹으면 기도가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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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릴 적에 먹었던 가루약의 쓴 맛이 기억납니다. 가루약에 사레가 걸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하다면 약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경우 불편함과 약간의 우려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이 조절 같은 다른 방법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많은 분들은 대개 약 먹는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혈압약이나 당뇨약 등과는 달리 항우울제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분들이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중독성이 있다’거나 ‘생각을 못하게 한다’는 등 향정신성 의약품(Psychotropics) 자체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 질환은 ‘약물로 치료 될 수 없다’라던지 ‘마음 먹고 노력하면 저절로 없어진다’라는 등 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로 인해 약물 치료를 꺼려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약물 치료로 효과를 보아도 ‘과연 정말 내가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 약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진짜 감정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라는 질문을 하며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걱정들은 과학적으로 이미 잘 밝혀진 바 대로 근거 없는 오해와 잘못된 추측으로 인해 생긴 것들입니다.

항우울제(Antidepressant)와 항정신병약 (Antipsychotic) 등은 중독성이 없으며 그 약품들의 치료 효과는 잘 입증되어 있습니다. 이런 약품들이 뇌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신경물질을 통해 효과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항우울제가 세로토닌이나 노아드레날린 등의 신경전달 물질에 끼치는 영향 외에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즉 뇌가 더 유연하게 자신의 연결 체계를 재조정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굳어진 생각의 패턴들의 변화를 더 용이하게 하며 실제로 뇌 활성화 방식이 한번의 복용만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도 있습니다.

다만 우울증이나 불안증의 경우 항우울제를 매일 꾸준히 복용하여야만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 변화를 느끼는 것에는 최소 2-6주 정도가 소요 됩니다.

향정신성 의약품 사용을 통해 목적하는 바는 뇌 안의, 특히 신경 전달 물질들의, 무너진 밸런스를 되찾음으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습니다.

즉 항우울제의 효과는 우울하던 사람이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즐거울 때 웃고, 슬플 때 울수 있는 원래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하기에 꼭 필요한 경우에, 치료에 필요한 가장 적은 용량으로, 필요한 기간 동안만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항우울제는 최소 1년 이상 복용이 적절한 경우가 많고 2-3회 이상 우울증을 겪은 경우에는 3-5년 이상 복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항정신병약의 경우 몇 개월만 복용해도 괜찮은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조현병의 경우에는 계속 복용하는 것이 권장되며 조울증 치료에 쓰이는 기분안정제 (mood stabilizer)도 장기 복용을 권장합니다.

지속적인 자기 관리, 식이 생활 개선, 주기적인 운동, 사회 및 직업 재활, 심리 치료, 친구나 가족과의 교류와 소통 등과 함께 약물 치료는 회복의 여정에 있어서 치료 계획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다만 어떤 분들에게는 약물 치료가 꼭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 혹은 다른 것들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다른 분들에게는 필요 없는, 아니면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약물 치료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데 있어서 특히 크리스천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약을 먹는다’는 행위의 의미입니다. 크게 두 가지 부분이 가장 어렵게 합니다.

첫째로, 약을 먹는 것은 “내게 정말 문제가 있다” 라고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약을 먹는 것이 ‘나의 건강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이 첫 걸음이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것이 내가 ‘약한’ 사람, 혹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약물 치료를 꺼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첫 몇 회에서 다루었듯이 정신 질환은 죄의 결과도 아니고 악한 영의 영향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용감하고 현명한 행위입니다.

둘째로, 어떤 분들은 약을 먹으면 믿음을 져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믿음의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야고보서5:15)와 같은 말씀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셨던 당시에도 의사들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안디옥에서 출생한 헬라인 의사였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던져진 ‘왜 너희 선생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하다” 는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약은 어떨까요? 구약과 신약 곳곳에서 우리는 무과화(이사야 38:21), 나무 잎사귀(에스겔 47:12), 약간의 포도주(디모데전서 5:23)와 오일(누가복음 10:34) 등 치료를 위하여 사용되는 약재들이 언급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의학과 약은 기도로 대표되는 믿음의 행위와 대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먹으면 기도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약을 먹는다고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께서 우리를 치료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고린도전서 10:31)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약물 복용을 포함한 치료의 모든 과정에 참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회복의 여정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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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람
오클랜드 의대졸업,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노스쇼어 한인교회장로, 와이테마타지역 보건부 모성정신건강팀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의학적이며 또 성경적인 이해는 무엇일까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