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복’이다

중국집에 가게 되면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게 된다. 炸醬麵을 한국어로 발음하면 작장면 또는 찰장면이라고 한다. 중국어발음으로 자지앙미안이라고 한단다. 아무든 짜장면은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법이라고 하다가 짜장면도 맞다고 인정했다.

그럼, 짬뽕의 뜻은 ‘밥 먹었니’와 ‘너무 맵다’가운데 어느 것일까. 짬뽕은 1889년 일본 나가사키 시키이로우라음식점을 하는 중국인 천평순주인이 가난한 중국인들을 보면서 ‘즈판'(밥 먹었습니까)묻고는 간단한 음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대접했는데 이를 보고 일본인이 ‘잔폰’이라고 했단다. 일제시대에 한국에 와서 ‘잔폰’은 ‘잔퐁’에서 ‘짬뽕’으로 불리게 됐단다. 1980년대부터 짬뽕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붉은 빛깔의 매운 맛으로 바뀌었단다.

배고픈 시절에 한 때 ‘밥 먹고 합시다’가 유행한 적이 있다. 밥은 국과 반찬과 함께 먹는다. 밥은 쌀로 짓는다. 밥상이나 수라상은 같은 말이다. 나락과 수라가 쌀의 또 다른 말인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에게 밥은 생명이다.

한국인들은 한솥밥을 먹는다고 식구라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밥그릇을 타고 난다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밥그릇이 다 차면 죽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밥숟가락을 놓았다고 하면 죽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못 먹어서보다 더 먹어서 자기 밥그릇이 다 차서 죽는 것과 같다.

거지도 죽을 때까지는 밥을 먹는다.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이 먹으려는 사람을 밥보라고 한다. 밥보는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다. 밥보에서 바보가 파생되었다. 이 세상에는 밥보들이 넘쳐난다. 밥은 육신을 위한 끼니를 넘어 생명으로까지 연결된다.

지금 세상은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짧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육신의 생명은 분명히 상대적으로 길지만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은 절대적으로 짧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육체만을 위한 세상의 밥에서 영혼의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갈릴리에 머물던 제자들은 오시지 않는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디베랴호수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세상은 밥그릇 싸움이다.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한다.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새벽에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숯불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다. 정결하게 정화된 숯불은 성전에서 쓰여진 것처럼 숯불에 구운 물고기와 피타빵으로 제자들에게 손수 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육신을 위한 끼니로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의 밥을 주셨다. 예수님이 주시는 밥은 진정한 복이다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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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