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로 뻗은 기다란 철골의 길이로 보아 대부분 골리앗크레인이 틀림없었다…그것들은 대부분 한쪽 팔이 길었다. 그래서 마치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보였다.”<물속 골리앗>112면, 김애란, <비행운>소설집, 문학과지성사, 2012.
재건축으로 부당하게 쫓겨난 소년은 물에 잠긴 골리앗크레인 위에 남겨졌다. 비에 젖은 소년은 크레인 위에서“누군가 올 거야”라고 말하며 밤을 지새운다.
세상은“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희망과 구원을 주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한 구원의 십자가가 아니라 한쪽으로 기운 십자가는 정의와 공의를 이룰 수 없다.
사회적 불평등은 기울어진 십자가처럼 평등하지 않다. 생존이 불안한 약자는 삶의 끝으로 내몰린다. 소득 분배의 불균형으로 생산된 가난은 연속적인 재난에 노출되거나 내몰린다.
부조리한 사회는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한다. 세상 끝으로 밀어내는 자본은 언제나 힘이 세다. 처절한 생존은 개인적인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사이에 놓이게 된다.
경쟁에서 지거나 밀려난 자는 그 존재조차 이해되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생존 싸움에서 이기고 빼앗은 자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른다.
과연“누군가 올 거야”라고 말하는 소년은 구원받을까, 철저하게 외면당할까? 아니면 혼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본과 부조리에 맞서다 죽은 아버지, 부당함으로 인해 죽어간 어머니를 둔 소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지신 십자가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하다.“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타내는 상징이고 전부이기도 하다.“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사람에 의해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가 아니요, 한쪽으로 기울어진 십자가도 아닌 항상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하다.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어 화평을 누리고 그리스도인과의 화목을 이룬다.
그러므로“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