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홈리스 사역

홈리스 사역은 2019년 1월 첫째 주부터 감사선교교회의 공식적인 사역으로 시작했다. 올해로 7년째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주일 아침에 일찍 예배를 드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시간인 오후 12시 30분에 우리는 시티 도서관 옆 거리로 나간다.

거기서 홈리스를 위한 거리예배를 드리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준다. 이 시간에 음식을 나누게 된 것은 우리가 봉사하기 편리한 시간이 아니라 홈리스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 시간대는 다른 봉사단체들과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드리느라 봉사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감당하기로 자원한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홈리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미국에서의 유학 경험 때문이다. LA 시내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섬기던 교회가 홈리스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있었다. 교회를 오가며 길거리에서 또 전철 속에서 수많은 홈리스들을 보았다. 심지어 전철이 지나가는 산속에도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 홈리스들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겼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왜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가? 미국에 있는 동안 이 질문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이다. 다른 교회를 섬기는 집사가 교회를 방문했다. 교제를 나누다가 그분이 개인적으로 홈리스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만남을 통해서 뉴질랜드에도 도움이 필요한 홈리스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8개월간 매주 한 번씩 홈리스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결국 공식적으로 교회 사역으로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홈리스 사역을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를 확인시켜 주셨다. 아내와 개인적으로 홈리스 사역에 참여하고 있던 8개월 동안 아무런 관심이 없던 성도들이 이 사역에 놀랍도록 한마음이 되었다. 또한 당시 아내가 일하던 가게에서 사역에 사용할 플라스틱 컵을 구입하는데 가게 주인이 그 컵의 용도를 알고는 선뜻 도네이션해 주었다. 그는 믿지 않는 분이었다.

알고 지내던 목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카톡이 왔다. 성탄절 예배 때 드린 헌금을 우리 교회 홈리스 사역에 헌금하기로 온 성도들이 기쁨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교회 역시도 재정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교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전부터 새벽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하고 있었는데 홈리스 사역을 위해서는 기도로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교제하던 영어권 키위교회에 새벽기도 장소를 부탁했다. 새해 첫 운영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장소를 허락해 주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함께 봉사할 도움의 손길들을 한국으로부터 보내주셨다. 워킹 홀리데이로 1년 동안 방문하게 된 두 청년이 봉사에 합류했다. 그들 중 한 명은 불교 집안의 청년이었는데 전도 대상자까지 보내주신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사역 가운데 성령의 임재하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강력한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했다. 부족한 영어로 설교할 때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온몸에 전율이 와서 때때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홈리스 거리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뒤늦게 한 홈리스가 찾아왔다. 이미 준비한 음식과 커피는 모두 소진되었고, 대접할 것이 없었다. 음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가 내게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기도라도 해주세요!” 그리고는 내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면서 그에게 안수하며 뜨겁게 기도해 줬다.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또 인도계 투바쉬 형제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으로 돈을 빌려서까지 마약을 했던 중독자였다. 그런 그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형제가 거리예배에 와서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신앙을 간증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역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10짜리 지폐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 순간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던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났다(요6:9).

그리고 결정적으로 홈리스 사역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있었다. 홈리스 사역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던 시점인 2019년 3월 15일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두 곳의 모스크에서 호주 출신 백인 우월주의자 테러범의 총격에 의해 50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한동안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왜 이런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가? 왜 평화스러운 나라 뉴질랜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뉴질랜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테러가 먼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 테러 피해의 당사자가 되었고, 이곳도 테러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테러가 있고 난 후 거리예배에서 한 홈리스 형제가 내게 다가와 테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무슬림과 같이 외국에서 온 종교인들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기여하지도 않으며, 자기들끼리만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제발 그들이 이 땅에서 나가 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와 소통하고, 나누기 때문입니다.”

거칠지만 솔직한 이 말을 듣고, 이민교회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신앙, 내 교회, 내 교단만을 챙기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공동체의 울타리를 허물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주신 복, 나누어야 할 복음을 나누지 않는 사람, 나누지 않는 교회, 나누지 않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집단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이 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소통하고, 베풂으로써 한인 사회와 한인 교회 공동체의 미래를 예비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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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표
미국 Fuller Seminary 선교학 석사, LA World Mission University 목회학 석사, 감사선교교회 담임. 7년째 오클랜드 시티 도서관 옆에서 매주일 오후 12시 30분 홈리스 위한 거리예배와 음식나눔 봉사, 한인 위한 행복의길 상담사역 하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나눈다(www.facebook.com/thanks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