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울고 말았다

서울의 집값이 또 들썩거리고 전셋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티브이에서 거푸 나오던 어느 날 아침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는 색 바랜 된 책이 눈에 뜨여 꺼내서 책장을 넘겨보다 이 만화를 만났다. 80년대 말 아니면 90년대 초쯤에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박재동 화백의 시사 풍자만화였다.

만화의 한복판에 힘없는 가장의 절망적인 눈동자가 있다. 어디를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손잡고 애원하는 딸아이도 굽은 등에 매달린 아들도 그만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 있는 아내도 볼 수 없는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의 눈동자가 아닌 것 같다.

‘전셋값 없어 일가족 4명 자살’
‘전셋값 없어 일가족 4명 자살’이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의 신문, 그리고 아빠를 부여잡고 부르짖는 딸아이의 목소리, “아빠! 우린 안 죽는 거지? 죽이지마 응? 아빠?”

거의 30년 전의 한국의 비참한 현실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만화였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또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한국의 현실은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전셋값이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고 요즈음도 한국의 많은 가장들은 이 만화의 불쌍한 아빠처럼 굽은 등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아침부터 가슴을 찔러오는 슬픔과 분노에 정신이 온통 먹먹했지만 그냥 참고 넘겼다. 가난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항시 우리 곁에 있어온 것이라고,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되뇌면서 그냥 넘기며 하루를 지냈다.

그런데 저녁에 KBS 뉴스에서 흘러나온 슬픈 소식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찔렀다. 한국의 노인네들 중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는 뉴스였다. 그런데 그 나이 든 어르신들이 한 달 내내 종이를 주워 모아 벌 수 있는 돈이 평균 3만 원에서 5만 원이라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덕길 내리막길을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손수레를 몰고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폐지를 주워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야 기껏 한 달에 5만 원인데 그나마 꿈지럭거려 벌지 않으면 입에 풀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조국 한국에 그런 노인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고 무려 백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한국의 노인네들 중 20%가 넘는 분들이 그렇게 비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폐지라도 주울 수 있는 분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분들은 그래도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폐지라도 줍지만 몸이 불편해서 문밖출입도 못 하는 분들은 입에 풀칠도 할 수 없기에 결국 택하는 길이 굶어 죽거나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향한 오열인지 몰라도 소리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은 울고 말았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비와 바람,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없어 차라리 그들과의 동반 자살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가장의 휑한 눈동자와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속절없이 늙어버린 몸뚱어리를 움직거려 손수레 끌며 폐지를 줍지 않으면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르신들의 초췌한 모습이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나를 휩쌌다.

한참은 그 슬픔과 분노의 화살이 한국의 위정자들과 인간 이하의 집단이 모인 국회의원들에게 향했다. 그러다가 다시 끝없이 갖기만을 원하는 탐욕스런 부자들을 원망하다가 자본주의 이대로는 안 된다고 무슨 혁명가라도 되는 듯이 온통 험한 심기를 있는 대로 혼자 터뜨리다가 드디어 그 슬픔과 분노의 물꼬가 나를 향해 터졌다. 탁류와 같은 비난과 힐난이 머릿속 혈관을 타고 나를 향해 쏟아졌다.

너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는 그들과는 다르기에 전세 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너는 그들과는 다르기에 나이 들면 매달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나라에 살면서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 네가 고통을 알아? 냄새나고 좁아도 괜찮으니 저녁나절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머리 맞대고 저녁 먹고 조각 이불이라도 같이 덮고 누워 잘 수 있는 방 한 칸 맘 놓고 빌려 쓸 수 없어 죽음을 생각하다가 이 험한 세상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가기엔 너무 맘이 안 놓여 결국은 다 같이 죽을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만화 속의 저 휑한 눈의 가장의 고통을 알아?

네가 그 고통을 알아? 평생을 몸 하나 밑천 삼아 시장바닥에서 뒷골목에서 힘들고 험한 일 마다 않고 벌고 또 벌어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겠다고 애쓰다가 내 몸 위해선 동전 한 푼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늙고 지친 육신만 남았는데 훌훌 떠나버린 자식들은 이 냉혹한 세상에 제 새끼들 건사하기도 힘든 모양이라 괜찮다 나는 괜찮다 손사래 쳐 쫓아버리고 꺼져가는 노년의 마지막 진까지 짜내어 손수레 밀고 폐지 주워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밖에 없는 뉴스 속의 저 어르신들의 고통을 네가 알아?”

옷깃 속을 파고드는 겨울 칼바람처럼 연속되는 스스로를 향한 힐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 번도 처절하게 혹은 간절하게 또는 격렬하게 삶을 살아보지 못한 이제까지의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고 또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왔다. 그분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나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휑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난 하루 종일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책은 아무것도 내게 가르쳐주지 못했지만
당신의 휑한 눈은 내게 겨울로 다가왔습니다
이 남국의 호사스런 태양 아래 잊고 살았던 겨울
그 겨울로 찬 바람과 함께 다가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내 작은 체온으로
겨울 밤하늘 가장 멀리 떨며 빛나는 작은 별만큼이라도
당신의 찬 바람을 녹여드릴 수 있었으면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 하는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길거리로 나앉은 가족들의 비참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
난 미사여구로 짜깁기한 시 한 편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급기야 사랑하는 모두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난 기껏 내 시를 읽을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쓴 시는 아무도 울리지 못하지만
“아빠! 우린 안 죽는 거지? 죽이지마 응? 아빠?”
당신의 어린 딸의 부르짖음은 모두를 울렸습니다
아 그 부르짖음은 혼미한 꿈을 깨치는 새벽의 날카로운 비명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내 보잘것없는 시가 그 날카로운 비명의 작은 메아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귓가에 울리는 신음이라도 되었으면 하지만
난 그것마저 못하는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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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동찬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사업 하다가 1985년 거듭남. 20년 간 Auckland Christian Assembly를 장로로 섬김.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성현의 말씀에 힘입어 감히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회를 시(詩)와 산문(散文)으로 자유롭게 풀어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