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문화를 원하는가?

지금 한국 서핑 문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에 앞서서 양양 해변 문화의 심각성을 다뤄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늘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고 이 땅에서 이뤄지는 하늘 소망을 꿈꾼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한국을 넘어 세계 바닷가에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이겠는가 생각해 본다. 서핑과 선교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깊이 들여다보자.

하조대에 있는 해변을 시작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양문화는 애당초 문화를 세팅하는 것이 MZ를 대상으로 한 유흥이었으니 곳곳에서 이를 저격하는 다양한 글이 나올 법하다. 코로나 기간에도 한쪽에서 부지런히 사업을 해왔다. 해변 DJ 공연과 파티들이 대표적이다.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타 서핑 커뮤니티들과 서핑 학교들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요인들로 이목을 끌었다. 시작부터 마케팅 전략이 훌륭했다. 로컬문화와 서핑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심/관점과 매우 다르다. 같은 문화인 듯 하나 결이 다르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그쪽에 한번을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갈 일은 없지 싶다. 양양 서핑엔 죽도해변과 기사문, 고성이 있는데 파티만 있는 곳에 굳이 왜 가겠는가 말이다. 그들도 하나의 문화를 누리고 소비하기 위해 가는 것일 뿐인 것은 인정한다. 다시 말하지만, 하조대 문화에 적대적이지 않다. 그것도 하나의 문화이다. 그저 필자가 가서 그러한 모습들을 보는 것이 싫을 뿐이다.

서핑 한국과 서핑 캘리포니아
전쟁 이후 미국은 X세대들로 큰 문화적인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비치 범은 빙산의 일각이다. 20세기 반복적인 전쟁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미국의 기성세대를 반대하고 더 이상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보내는 정부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신뢰는 없다. 충돌이었다. 반정부적 반항아 기질이 X라는 단어에 다 담겨있다. 세대를 구분하고 연구하는 이들은 그런 세대를 기성세대와 정반대의 입장에 놓기도 한다.

기성세대와 기득권자들은 젊은이들이 명예로운 죽음을 담보로 부와 권력을 쌓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 승리가 우리의 것이니 안정된 너의 미래는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결과물이다. 우리가 너의 미래와 가족들을 책임지겠다. 다만 네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와야 누릴 수 있긴 하다. 이런 모습은 영화 지저스 레볼루션(2023)에서 잘 나타나 있다.

1970년대의 서핑은 서핑 캘리포니아로 소개되어 있다. 한국은 1980년대에 와서야 소개된다. 히피들과 X세대가 넘치던 시대이다. 그러니 바닷가에 비치 범들과 서프 범들이 넘쳐난 것이다. 그들의 삶은 간헐적 노숙에 가깝다. 히피들은 자유를 찾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진리를 찾고 있었다. 달리 얘기하면 ‘삶’을 찾고 ‘나’를 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X세대이다.

세대 연구자들에겐 베이비 부머 이후로 구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수식이다. X세대 다음엔 Y세대와 Z세대가 순차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Y는 Y2K의 Y이며 밀레니얼의 M의 본의이다. 그렇게 MZ세대가 X세대를 이어서 나오게 된다는 것은 이전 글들에서도 여러 번 다루었다.


그 시대에 그 모습들을 지금 한국이 따라 하는 듯하다. 그렇게 다가오는 알파 세대 및 그다음 세대를 논의하기 위해 지금의 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유흥이 판을 치는 문화를 보고 있다. 그러나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무브먼트를 일으킬 생각보다는 한 곳에서 변화를 위해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청년들과 동주의 시를 읽고 싶다. 도산의 시라도 읽고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양양 서핑 문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수단만 있는 서피비치에는 목적이란 없다? 라이프 스타일이 전부인 서핑에 삶은 없고 소비만 남았다? 지난 6월 16일 어느 편집자의 글의 시작이 그랬다. 사실 코로나에 눌려온 이들의 목적 없는 낭만과 MZ 유흥만 있다. 양양에 있는 소위 ‘양리단길’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부정적으로만 볼 마음은 없다. 열심히 살아왔고 여름휴가에 쉼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방법이 늘 그런 것을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마을의 어르신들과 현지의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상생의 철학과 건설적이고 건전한 문화 지킴이의 열심보다는 마케팅이 짙다.

신앙인들이 바라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고 이타적인 사고와는 정반대인 이기적 가치만이 남아있다. 온큐레이션이 하조대의 서피비치에 대한 묘사는 정확하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 어디에도 서피비치만큼 서핑을 수단화하여 이만큼 돈도 사람도 끌어모은 곳이 없다. 돈벌이 수단이다. 그렇게 모든 바닷가 문화가 그러하다고 떠드는 이들도 있다. 서핑 선교도 서핑도 망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서핑 사업이 망가지고 있다
늘 서로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킨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핑 강습에도 나타나지 않는 예약 강습생들과 클럽은 관계가 깊다. 문제는 클럽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보지 못한 ‘노쇼’ 개인에게 화살이 간다. 당연하다. 클럽이 그들을 서핑 강습에 못 가도록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강습에 늦게 나타나는 일부터 노쇼도 비일비재하다. 강습에 인원 초과로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물론 기회를 미뤄야 했다. 강습을 받는 다른 참가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 낭만적이고 휴가철 여유로 유연하고 친절한 마음에 백번 양보하며 너그럽게 넘어간다.

한두 번은 그렇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저 울며 겨자 먹기를 할 뿐이다. 그 안에 있었던 서핑 문화에 대한 애정도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문화로 한 걸음씩 성장하게 도우며 마을을 꾸며가고자 했던 생각은 자본에 밀리고 무례한 손님들에 밀려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하는 길을 잃은 숍들도 있다.


다시금 일찍이 바라던 아름다운 죽도와 서핑으로 행복한 이야기를 가득하게 할 현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멋지게 만들어 쌓아가야 한다. 하조대의 관광명소가 된 서피비치가 또 100대가량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하조대 바닷가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같이 갈 뿐이다. 늘 암묵적으로 공조해 왔고 서핑 컬처가 사용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왔으니 할 이야기가 없지 않은가. 두 문화가 따로 아닌 함께 같이 간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어떤 문화를 원하는가?
크리스천들은 서핑으로 건강한 문화를 만들 수 있는가? 당연히 가능하다. 아름답고 즐거운 마을에 어우러진 그런 문화가 가능하다. ‘OOC PLZ’ 행사가 지난 현충일에 열렸다. 2박 3일간 크리스천들은 모여서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는 듣고 나누는 시간으로 가득 보냈다.

크리스천 청년들과 다음 세대 사역자들이 로컬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간다. 로컬 셀러들이 참여한 마켓은 신앙인과 비신자들의 어우러진 장이었다. 이동 인구를 포함 70여 명이 주말에 현남중앙교회 마당을 가득 채웠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함께 갈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잣대와 비난의 손가락질보다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에 대한 신앙과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누리는 서핑에 가치를 둔 존재의 문제이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신앙과 서핑이 만나니 존재론적 질문도 가능한 것이다. 저곳을 택해도 좋고 이곳을 택해도 좋으나 결과는 그대의 몫이다. 파도가 들어온다. 서핑하러 나가야 하니 그대의 결론은 다음에 듣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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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윤
현대문화를 통해 선교하는 제레미 윤(윤성운) 청년들을 사랑하는 목회자. 크리스천 서퍼스 코리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선교사로 전도는 전도전사역Pre-evangelism을 시작으로 직접적인 구원영접까지 긴 삶의 연속을 함께하는 것. 이 비전 품고 서핑을 통해 젊은 이들을 ‘삶’으로 전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