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에 지쳐갈 때

기다림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툭 떨어진다. “하, 미치겠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미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을 화가 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견디는 것이나 인내하는 편이 더 신앙인답다.

지친 속마음을 대변하듯 차디찬 봄 아스팔트에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그저 힘없이 굴러가는 것만 같다. 기다림이 길어질 때 우리의 언어도 추워서인지 믿음 없이 던져진 말과 함께 던져진 말은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또르르 굴러간다.

긴 겨울, 아직 목련도 피지 않은 것 같아 우울감마저 엄습한다.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지? 이 불안함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그만할까? 좀 더 가야 하나? 하면서 갈팡질팡 싱숭생숭하다. 그러다가 한없이 우울해질 때면 문득 공황이 왔나 싶은 생각에 지하실 곰팡내처럼 숨에 턱 막힌다. 그 정도는 아닌듯하니 아직 기다릴 만하다.

모든 기다림은 믿음에 가득한 확신보다는 두려움을 친구삼아 다닌다. 불안은 두려움의 가족이니 아주 가까이에 붙어있다. 불안한 감정은 알지 못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니 불안과 두려움은 한식구나 다름없다. 불안은 평안이 아닌 불만, 불행, 불쾌를 동반하는 불화이다. 기다림과 그의 친구 두려움에 지쳐갈 때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이들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잔치를 벌이니 큰일이다.

내 마음의 벽을 뚫고 속에 있는 정신력을 시험하듯이 공황장애도 함께 온다면 모두 놓고서 도망쳐야 한다. 쉬어야 한다. 무조건 그렇다. 마음과 정신을 아프게 하는 병은 그런 것이다. 공항이 왔는데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기가 한여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남몰래 산타할아버지 기다리다 양말에 선물 넣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 아이와 같다.

남태평양의 덥디더운 크리스마스에 이런 어이가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아이는 허무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충격은 오래간다. 엄마의 실망감은 또 오죽하랴. 엄마가 자라고 하면 자는 것이 맞다. 마음 병이라면 뜬눈으로 기다리는 것도 그만해야 한다. 좀 쉬어라.

잠시 곁길로 샜다. 공황장애도 우울증도 아니라면 조금 더 기다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미치겠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좋다. ‘하….’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깊은 한숨이 땅에 떨어질 때 기다림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다.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다. 기다린 거 좀만 더 기다려보자.

올 거라고 곧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봄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려면 늦겨울 목련이 짙어야 하는 것처럼 꼭 순서가 있는 법이다. 목련과 벚꽃이 같이 피어도 안 되겠고 일찍 꽃이 떨어지고 맺힌 과일이 당황스럽게 달려 있다면 그것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렇게 때아닌, 설익은 과일은 더욱 위험하다. 복통으로 하루를 망칠 수도 있다. 10월에 피는 꽃과 11월에 피는 꽃은 다르며 철에 맞는 과일은 그해 공급되는 해와 비에 맞춰 고르게 잘 익어가야 한다.

기다림에 지칠 때 기억하자. 오히려 사랑하고 기다리자고. 멀리서 파도가 일렁이면 서퍼들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길을 나선다. 오래 기다려본 이들만 일렁이는 물결에 너울에 설레며 먼저 파도가 깨질 그곳으로 빠르게 나아간다. 멋진 파도가 깨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힘 있게 치고 나아갈 것이다.

믿음이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과 같다면 소망하며 잠들고 밤을 지내야만 한다. 더는 팔이 아파서 물결을 가르고 나아가지 못해도 한 번 더 또 한 번 물을 끌어당겨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던 날을 맞이하고 바라던 곳에 서서 만나기 위해 꼭 어두운 밤을 보내야만 한다. 커피 하는 목사의 말이 귀에 맴돈다.

“생두는 자신을 불태워 원두가 된다.” 그렇게 다 태운 후에 21그램의 커피 원두는 갈아지고 녹으면서 향을 낸다. 누구든 이 땅의 무엇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서퍼에겐 300시간의 규칙을 이야기한다. 일 년을 다 서핑으로 보내야 조금 타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한 주에 한 번씩 바다에 나간다면 6년이 걸린다. 그것도 한주 두주 빠지면 10년은 더 걸리는 일이니 우리의 삶에 왕도란 없다.

추운 겨울이 다 가고 목련이 벚꽃이 피어 벌들이 생명을 낳고 여름철 열매들이 때를 따라 내리는 비에 태양에 잘 자라면 곱디고운 열매를 맺게 되니 계절마다 농부는 이 모든 과정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한다. 제일인 사랑으로 그렇게 오래 참고 기다린다.

그러니 다 놓고 싶을 때 오히려 사랑하고 더 사랑한다. 상상만 해도 좋은 그날을 바라며 더 사랑한다. 미치겠다 싶은 그때, 기다림에 지친 그때, 오히려 더 사랑하자. 그렇게 10년 20년도 할 수 있다. 이 비밀이 사랑은 오래 참을 수 있는 비결이다. 사랑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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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너무 행복해하는 커피 노마드이자 문화선교로 영혼을 만나는 선교사. 커피, 서핑과 음악을 통해 젊은 이와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며 밤낮이 없는 커피 테이블 호스트를 자청하여 청년 선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