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애플의 아이패드가 세상에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아이패드를 너무나 갖고 싶었던 중국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돈이 없어서 그 비싼 아이패드를 구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어떤 제안을 했느냐 하면 “내가 나의 신장 하나를 줄 테니까 아이패드를 사달라!”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기의 신장을 팔아서라도 아이패드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무엇을 다루는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이 소설의 배경이 1922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의 모습이다. 이 시대는 소비의 시대였다. 전쟁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움츠려든 모든 욕망이 막 쏟아져 나왔던 때였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허영과 욕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다
주인공 개츠비는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돈이 없어서 한이 맺혔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상류층으로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돈을 버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 금지되었던 주류 밀주를 유통시켜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결과 그 시대에 누구나 꿈꾸는 것을 이루었다.


개츠비는 철두철미하게 욕망을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에게 자기가 소유한 럭셔리한 자동차를 자랑했다. 이미 결혼한 첫 사랑 여인, 데이지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의도적으로 계획된 파티를 수차례 열었다. 개츠비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데이지를 차지함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또 다른 인물, 데이지는 사랑과 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결국 사치로 누리는 안정감을 선택했다. 이 여인은 상류사회 문화에 빠져 살았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보여준 좋은 옷들을 보면서 감격해서 울었다. 사람들 중에 옷을 보고 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옷이 너무 좋아도 그렇지, 보통 사람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임을 작가는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파티에 참석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소설에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실려 있다. 이들의 이름들이 왜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야 했을까? 그 이유는 이들도 다 욕망으로 가득 찬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작가의 암시일 것이다.

상류사회에는 파티가 중요했다
자기 자신의 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파티였다. 파티에 누가 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지? 어떤 종류의 차들이 파티를 하는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장치였기 때문이었다.

과연 무엇이 ‘위대함’일까?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에서 ‘위대함’이란 무엇을 뜻할까?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위대함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위대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많이 가지는 것이 위대함일까?


작가는 무엇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을까? 미국의 문학에서 1920년대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표현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욕망을 따라 살다 보니 인간다움 기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다움의 기본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좀 더’를 외친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작품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독자들이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100년 전의 소설인데도 말이다. 100년 전의 인간의 욕망이나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모습이 똑같지 않은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상류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위대함일까? 이 같은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이 설레고 가슴 뛰게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님에게 맞먹으려고 했다. 또 다른 욕심이지 않은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했다. 왜냐하면 한 사람, 아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욕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씀은 끝맺는다. 아마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일상의 가치는 절제 . 만족 . 감사에 있다
인간은 욕심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산다. 그 욕심 때문에 인생이 구겨지고 망가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거룩’이라 하면서 경건의 모양만 있는 포장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크고’, ‘거룩하고’, ‘멋진’ 일들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관찰할 때는 지극히 평범한 것을 바라본다. ‘인성’, ‘인격’, ‘일상’과 같이. 우리는 일상 속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 중에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 16:24). 그러므로 욕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삶이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차면 우리는 쉽게 불평한다. 그러면 삶이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미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지 않지만 절제해야 한다. 절제하면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삶의 크고 작은 일에 만족하면 결국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면 그땐 우리는 감동과 감탄을 연발하며 살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욕망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가치를 따라 절제하며,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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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겸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목회트렌드 2024』및『다음세대 셧다운』공저. 오클랜드감리교회 담임목사. 하나님이 사람과 소통하시려고 성육신 하신 것처럼, 기독교인도 세상과 소통할 통로가 필요하기에 인문학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