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속에서

최명희 작가의 혼불 문학공원
얼마 전 전주에 갔다가 최명희 작가의 혼불 문학공원을 찾았습니다. 가을이 한참 깊어져 갈 때였습니다. 작가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는 공원이라 찾았지만 건지산(乾止山) 자락에 자리 잡은 이 문학공원은 들어가는 입구와 묘역 주변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1947년에 태어난 최명희 작가는 1980년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으로 등단하였고 1981년 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전에 ‘혼불’로 공모하여 당선되었습니다. 나중에 ‘신동아’ 잡지에 연재되어 대단한 선풍을 일으킨 ‘혼불’은 최명희의 대표작으로 불립니다.


앞날이 기대되었던 작가는 불행히도 암이 발병하여 51세의 나이로 결혼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가의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아한 느낌을 주는 이 공원은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들려볼 것을 권하고 싶은 만큼 아름답습니다.

묘소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작가의 생애를 생각했습니다. 나와 거의 동년배의 이 작가는 여인의 몸으로도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51년의 짧은 삶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70이 넘게 살고 있는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듯 마침 불어온 초겨울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바람도 찼지만 나를 더욱 춥게 만든 것은 바람의 질책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차가운 자책감이었습니다.

서부진언 언부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묘소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 눈을 꽉 채우고 들어온 것은 가을 나무와 골짜기, 그리고 땅을 뒤덮고 있는 잎사귀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 낸 색깔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잊게 만드는 그 화려한 색깔에 취해 한참이나 서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서부진언 언부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는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의 구절이었습니다. ‘글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書不盡言), 말은 뜻을 다 하지 못한다(言不盡意)’는 이 말씀을 분명 최명희 작가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감수성 예민하고 글쓰기에 삶을 바치기로 한 그녀에게 이 문구는 어쩌면 커다란 고통으로 가슴속에 담겼을 것입니다.

살아생전 그녀는 ‘다만 저는, 제 고향 땅의 모국어에 의지하여 문장 하나를 세우고, 그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 합니다. 한없이 고단한 길이겠지만, 이 길의 끝에 이르면 저는, 저의 삶과 저 자신이, 서로 깊은 이해를 이루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장 하나에 의지하여 한 세계를 세워보려고’하였기에 그녀는 혼신을 다하여 글을 썼습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7년 2개월 동안 월간지 ‘신동아’에 혼불을 연재하며 작품에 쏟아부은 그녀의 노력은 초인적이었습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았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작품을 쓰기 위한 어휘 하나하나를 찾아내고 빚어내기 위한 그녀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노력을 말해줍니다.

소설 혼불이 완성되기 전 빠져나간 작가의 혼(魂)불
이런 그녀의 작품 정신이었기에 캐내도 캐내도 뜻을 다 하지 못하는 말(言不盡意)과 목숨을 바쳐 써도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글(書不盡言)은 그녀에게 창작의 도구이자 또한 다루어도 다루어도 어딘가 미진한 아쉬움이었을 것입니다. 이 아쉬움이 쌓여 급기야 그녀의 몸 한구석에서 암(癌)이 되어 퍼져 나갔고 그녀는 장편 ‘혼불’을 미완으로 남겨놓고 51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고 말했던 그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혼불’의 진정한 의미를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혼(魂)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죽기 얼마 전에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그녀가 그렇게 애착을 갖고 공을 들였던 장편 ‘혼불’이 완성되기 이전에 글을 쓰다 기진한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가을 골짜기를 뒤덮고 있는 잎사귀들이 빚어낸 색깔을 보았을 때 입 속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언부진색(言不盡色)이었습니다.

나무는 겨우내 숨죽이고 생명을 지키고 있다가 봄이 되면 싹을 틔우고 여름엔 마음껏 잎을 내다가 가을이 되면 사람에게서 ‘혼불’이 빠져나가듯 모든 잎을 내려놓습니다. 입이 없기에 말(言)을 할 수도 없고 손이 없기에 글(書)을 쓸 수도 없는 나무는 잎을 떨구기 전 말과 글 대신 색깔(色)로 모든 잎사귀를 물들여 내려놓았기에 지금 최명희 작가의 묘소를 받치듯 둘러싼 계곡이 이렇게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떤 말로도 어떤 글로도 이 아름다운 색깔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무심코 ‘말이 색깔을 다 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언부진색(言不盡色)’이라는 생경한 단어가 내 입 속에서 튀어나왔을 것입니다.

몸을 돌려 공원을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아직도 변변한 작품 하나를 못 내놓았다고 자책하지 말자. 가을 계곡에 잎을 떨구는 나무가 아무런 욕심 없이 잎을 내려놓았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깔의 극치(言不盡色)를 이루었듯 나도 삶을 지키고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글을 쓰면 그 속에서 언젠가는 최명희 작가의 ‘혼불’과 같은 작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혼불 문학공원을 내려오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본 것이 아래의 시(詩)입니다.

언부진색(言不盡色)
세상의 모든 색깔이 다 모였구나
가을도 이미 떠난 숲속
초겨울 추위가 온 숲을 휩싸버렸는데
아랑곳없이 아랑곳없이
차가운 대지 위에서
색깔 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이 가을
떨어져 쌓여있는 잎사귀들이여
색깔로 세상의 모든 말을 뒤덮는구나
언부진색(言不盡色)
너희들 앞에서
나는 문득 벙어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