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용어의 유래
Q.T(quiet time)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사람은 1882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후퍼(Douglas Hopper)’와 ‘도르톤(Thorton)’이었다.
1학년 때 캐임브리지에서 열린 무디(D.L Moody)의 전도 집회에서 회심한 후, 친구들과 열심히 경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이들은 후에 캐임브리지 7인으로 불렸다. 이들이 시작한 경건운동은 세계를 변화시킨 영적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마음과 생활이 세속적인 경향으로 꽉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도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하루 중 일부를 성경 읽기와 기도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시간을 ‘Quiet Time’이라 불렀고, “경건의 시간을 기억하자!”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하도록 권유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아침 일찍 최소한 20분, 가능하면 한 시간씩을 기도와 성경연구를 위해 따로 떼어놓으며, 또한 잠자기 전에도 계속해서 잠깐씩 그러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다.”
이후에 이들은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고,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역을 감당했다. 후에 이들의 경건 훈련방법인 QT라는 용어를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된다.
큐티를 시작하자
선택하라
일정하고 규칙적인 시간, 가장 정신이 맑고 조용한 시간을 선택하자. 나에게 있어서 이런 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자. 하루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주로 아침 시간일 가능성이 많다. 직장인의 경우 회사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시간을 가지거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10분이나 20분 정도를 확보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큐티를 할 수도 있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 규칙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자.
조용한 장소, 일정하고 규칙적인 장소를 선택하라.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주방의 식탁도 좋다. 방에서는 책상이 좋겠다. 침대나 소파는 추천할 만한 장소는 아니다. 나만의 골방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큐티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승패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준비하라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실까?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사모하는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큐티를 의무 방어전을 치르듯 하지 말자. 며칠 굶으면 소화 기능이 회복될 수도 있다. 사모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며칠 묵상을 굶어도 괜찮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책과 필기도구, QT 교재와 노트 등을 준비하자. 모바일이나 피시로 큐티를 할 수도 있다. 필자가 권하는 큐티는 성경을 펼치고 손으로 적으면서 하는 방식이다.
기도하라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허물 수 있도록 회개 기도를 먼저 한 후, 말씀의 깨달음을 위한 기도를 하면 좋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느니라”(이사야 59;1-2)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힘들다.
먼저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두 번째 드릴 기도는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시편 119:18)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오늘 우리의 손에 들려주기까지도 성령으로 역사한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도 성령께서 눈을 밝혀 주셔야 한다. 이렇게 기도하고 큐티를 시작하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큐티는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가운데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부르시자마자 훈련하시고 파송하지 않으셨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첫 번째 목적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큐티는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천둥이나 지진처럼 요란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잔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신다(열왕기상 19:12). 그러므로 그 음성을 들으려면 조용히 말씀 앞에 귀 기울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3).
인격적인 큐티를 하자
큐티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인격적인 교제다. 인격적인 큐티는 머리에 있는 말씀을 가슴으로 끌어내려 손과 발로 행하게 된다. Head, Heart, Hand로 이어지는 큐티는 지성으로 관찰하며, 감성으로 묵상하고, 의지로 적용한다. 하나님 인격의 결정체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전 인격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인격적인 큐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말씀이 이해되지도 않고, 가슴에 와닿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순서를 바꿔보면 좋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 말씀을 순종해 보자. 말씀을 적용하는 순간 그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런 경우를 종종 경험해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선한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한 적이 있다. 순종 후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그 말씀이 이해된 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크고도 깊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말씀 묵상의 전제가 되면 좋겠다.
큐티하면 성장한다
필자가 개척 때부터 3년 동안 섬겼던 교회는 담임목사가 여자분이셨다. 필자는 경상도 남자에다 고신에 소속한 목회자였기에 여목사님을 모시고 사역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기쁘게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일마다 성도들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살아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열심히 섬길 수 있었다.
그 교회는 모든 성도가 큐티를 해야 한다.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들, 심지어 유치부 아이들까지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모두 큐티를 한다. 성도들이 모이면 정치적인 대화나 자녀 자랑, 직장 이야기 대신 큐티한 말씀을 나눈다. 큐티를 하지 않으면 대화에 끼기가 힘든 분위기였을 정도다.
큐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삶을 오픈하고, 말씀을 적용하는 나눔이 활발한 교회였다. 살다 보면 부딪히는 여러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비추어 보고 해석해 보면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것들이 하나, 둘 풀려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말씀으로 내 문제가 해석되고 나니 마치 해결된 것처럼 감사가 회복되고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들을 날마다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말씀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큐티를 통해 말씀에 뿌리내린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필자가 이민 목회를 경험한 후에 깨달은 사실은 이민 교회가 가지는 아픔의 이유가 말씀의 뿌리가 없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큐티 사역을 놓고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자들 가운데 새롭게 큐티에 도전하는 성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