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후회하지 말자 씨앗은 자란다

텃밭 농사 10년째다. 씨앗을 심어 보니, 정성을 쏟아도 죽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은 산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심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심어 놓아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사람 농사도 똑같고, 목회도 똑같다. 땀 흘려 씨앗을 심어 놓으면 그중에서 좋은 열매들이 나온다.

열매 얻기 위해서 씨앗을 심다
주일 설교 준비할 때 일주일 동안 매일 3-4장의 성경을 읽고 그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닫는 내용을 본문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책 1-2권을 읽었다. 새로운 지식은 생각의 마중물이다.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주일 설교 준비 시간은 20-30시간 소요된다. 완성된 설교는 아내에게 전송된다. 내 아내는 감정이 섞인 내용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을 과감하게 걸러낸다. 그런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5-6번 고쳐 쓴다. 내가 확신이 설 때까지 고쳐 쓴다. 확신이 있어야 전하는 나나 듣는 이들에게 무언가 와 닫는 것들이 생긴다.

세계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민 목회 10년간, 신바람 나게 일했다. 10년이 지나자 나의 영혼은 논바닥 갈라지듯이 메말랐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은행에서 2만불을 대출받았다. 시각과 청각의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서 고 강영우 박사님께서 추천해 주신 미국의 대학들을 둘러보았다. 좋은 대학을 찾았으나 학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대신 뉴질랜드에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쪽으로 뜻을 정했다. 고비 때마다 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교 현장을 방문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케냐, 북한 등등… 그런 경험들이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의 기준이 달라진다


미국에 갔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은 빈민 구제사역을 하는 목회자였다. 그분과 함께 LA 시내 한복판에서 노숙자 점심 나누어 주고, 200켤레 양말을 사서 직접 나누어 주고, 노숙자 숙소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노숙자들과 일주일을 지내다 보니, 온통 노숙자만 보였다.


유니버설스튜디오를 가든, 할리우드 거리를 걷든, 라스베이거스를 가든, 어디를 가든지 우리 눈에는 노숙자만 보였다. 심지어 워싱턴 DC 한복판에서도…, 결국에는 뉴욕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숨진 채 누워있는 노숙자를 보았다. 누구에게는 꿈의 나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노숙자의 나라로 인이 박혀 버렸다.

보는 만큼 세계관이 열린다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걷고 난 후, 딸아이는 눈빛이 달라졌다. 뉴욕커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본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공부하는 자세와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잔소리 한마디 안 해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잘 성장했다.

다시 10년 후, 교단의 연금 관리 회사가 바뀌면서 연금을 중간 정산할 기회가 생겼다. 그 돈으로 이번에는 유럽을 투어하며 종교개혁지를 중심으로 유럽 이민교회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들은 화가로서 성장하여 작품 활동을 막 시작할 때였다.

파리의 박물관 5곳을 돌았다.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우리 부부는 건성으로 그림들을 지나가는데 내 아들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림에 깊이 심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 아들이 화가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5시간이고 6시간이고 그림을 빨아드렸다. 뉴질랜드로 돌아왔을 때 아들의 그림은 달라졌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되 평가에 갇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리더가 가난하고 청렴하고 어렵게 사는 것을 선호한다. 빈 마음 빈손으로 사는 모습을 보기를 원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리더는 보는 눈이 한두 단계는 앞서 있어야 한다. 한두 단계 앞서가려면 청렴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는 눈을 높이기 위해서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도전과 모험이 필요하다. 미리 앞서가 보아야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 교회에서 처음으로 장로 5명이 임직을 받았다. 장로 교육의 마지막 코스는 한국의 대표적인 6 교회, 미국의 부흥하는 6 교회를 투어 하는 아웃 리치였다. 방문하려는 교회들의 담임목사들께 서신을 보내며 협조를 구했다. 12개 교회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장로님들의 첫 마디는 ‘목사님, 우리 예배 개혁해야 합니다.’였다. 과감한 예배 개혁이 일어났고, 그 예배 형태는 25년 동안 이어졌다. 헌데 지금 보니 또 틀에 갇힌 듯하다. 조금 더 자유로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의 뜻을 따라간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목회 마지막 10년은 다음세대 지도자 100명 양성하는 것을 뜻으로 정했다. 이민교회의 다음 세대 지도자 양성을 위해서 LA 1.5세 출신으로 몽골국제대학 교수로 있는 분을 1년 반 동안 기다린 끝에 중고등부 담당 교역자로 청빙했다. 또한 호주 1.5세대 출신 목회자를 청년회 담당 교역자로 청빙했다. 영어와 한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었다.

다음세대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설교와 교육이 이루어졌다. 자녀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중에는 신학교를 지원하는 학생들도 배출되었다. 1세와 2세를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두 분이 잘 감당해 준 결과였다.

10년 공을 들인 끝에 영어와 한국말이 동시에 가능한 이민목회 전도사 3명을 배출했다. 100명 양성을 꿈꾸었는데 기존의 두 사람을 포함해서 총 5명 배출했다. 나머지 사역을 다음세대들에게 남겨 둔 채 사역을 마무리했다. 못내 아쉽다. 하지만 뿌려진 씨앗은 어디에선가 자라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