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의 가정은 각각 지역은 달랐지만 3대째 믿는 집안으로 기독교 문화와 가정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문화인 구한말 당시와 일제 압제하에서는 어떠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전쟁과 산업화의 격동기 속에서 생존과 신앙이 공존하여야 했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느 정도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했지 않았나 싶다.
감사한 것은 양가 모두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였고 특히나 우리의 가정은 저녁 잠들기 전에 가정예배를 드려 왔기에 결혼 후 분가하여 둘이 자유롭게 살면서도 아내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고 큰아이 출산 후에도 저녁 9시 뉴스 시간에 우리는 거의 매일 예배를 드렸었다.
뉴질랜드 유학을 결심하고 영주권 신청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정예배의 기도 제목은 영주권 취득이었다. 이민법이 바뀌어 신 기술이민은 쉬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승인 사례도 없는 첫 시도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상황이라 기왕 준비하고 시작한 바에야 영주권을 취득하여 가는 것이 당연히 경제적으로나 체류 조건 등 유학이 최상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예배와 기도 습관의 힘
뉴질랜드 기술 이민법이 91년 11월 발표됐고 92년 초부터 신청과 접수를 진행하면서 계속 가정예배를 드렸다. 큰아이가 91년 10월생이므로 한 살도 채 되지 않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은 특별히 국제운동 경기가 있던 날이어서 우리가 정해진 예배 시간인 밤 9시에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큰딸이 아직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두손 두발로 기어가더니 티브이 장식장에 있는 성경책을 꺼내는 것이었다.
순간 나와 아내는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보통은 예배드릴 때 자고 있을 때가 많았고 깨어 있으면 가슴에 안거나 무릎에 앉혀서 같이 예배를 드리기는 하였지만 이 아이가 과연 그 정해진 가정예배 시간임을 알고 반응을 하였을까? 그냥 우연일까? 하나님의 응답일까? 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연은 절대 아닌 것이 성경책 가지러 가기 전에 얼마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곳곳에 있었고 우리가 앉아 있던 곳에서 티브이장까지는 끝에서 끝이었기 때문에 절대 우연히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일가친척과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늘 우리 가정의 간증이 되었고 그렇게 성장한 딸은 지금도 아무리 바쁜 의대 공부 시절과 24/7로 근무하는 수련의 과정 중에도 잠은커녕 때로는 밥 먹을 시간조차도 잘 허락되지 않는 근무 환경에 처할지라도 기숙사 주변이나 병원 교회라도 가서 주일예배를 드리려 했고, 정 시간이 없으면 교회 문턱이라도 밟고 짧게 기도하고 다시 근무지로 뛰어 가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결론은 습관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늘 신앙인으로 생활한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반응을 하는 것이고 결국 평생의 삶의 기준을 좌우하는 것임을 알게 되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라떼가 겪는 격세지감, Analog to Digital Era
내가 처음 뉴질랜드로 왔을 때는 1993년으로 컴퓨터의 새로운 장을 연 윈도우 95 출시 이전이었다. 퍼스널 컴퓨터가 있기는 하였지만 통신과 인터넷 보급이 미흡하던 시절이라 이메일이 뭔지도 몰랐고 그 당시 386세대였던 우리는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마지막 세대였다고 생각된다.
즉, 디지털이라고 하면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디지털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휴대폰 개념도 잘 없었고 아주 고급 자동차에 카폰 정도 장착되던 시절이었으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서 현상과 인화를 거쳐야 사진 한 장을 얻던 시절이었다.
이민 초창기 뉴질랜드에서 차를 몰고 어디를 가려면 해당되는 지역의 길을 알아야 해서 지도책을 서점에 구입하여 차에 비치하고 몇 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방향을 시뮬레이션 해서 주행해야 목적지에 간신히 갈 수 있었다.
운전자 옆 조수석에는 늘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가족이나 동승자가 지도책을 보면서 길 안내 보조역할을 하곤 하였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새 길은 물어물어 가야하고 그러다가 길을 놓쳐 다시 돌아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고 특히나 야간에는 조명도 제대로 없는 뉴질랜드 길이라 아예 어디 가는 것을 포기한 적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디지털 천국이 되어 모든 휴대폰 단말기에 내비게이션 앱이 장착되어 있고 최근 자동차들은 자체 내비게이션 지도가 있어 목적지만 입력하면 아무 걱정 없이 내비게이션을 믿고 가라는 대로만 따라가면 손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내비게이션을 잘 따라가다가 실수로 길을 잘못 가면 다시 방향을 잡아 주기도 하고 경로를 재 설정해 주면서 궁극적으로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 주는 것이 내비게이션의 기능이다.
영적 내비게이션, 예수그리스도
그렇다면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무엇일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적 내비게이션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주님께서 우리가 처한 현 위치에서 로드맵을 만들고 가장 적절한 길로 안내하실 거고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고 아무 염려 없이 그 안내에만 따르면 무사히 천국에 갈 수 있는데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내가 정하는 길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내 맘대로 노선을 정하여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여호와 이레를 체험한 우리 가정에 있어서 뉴질랜드에서의 지난 30년은 한국의 모든 배경과 경험을 뒤로 한 채 제로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늘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도를 통하여 그분을 찾고 주님을 외칠 때 그분께서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러나 정말 좋은 길, 나중에 돌이켜 보면 최상의 시나리오 환경으로 인도하여 주셨고 유학 이민의 어려운 생활 가운데도 예외 없이 나의 나침반을 내려놓고 Jesus Navigation 즉, 그분을 신뢰하고 따랐을 때 체험한 것도 정말 많았다.
이런 우리 가족의 유학과 이민의 삶이 바로 주님을 신뢰하고 길을 따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천로역정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