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롯불
나는 들불이 되고 싶었다
아니면 횃불이라도 되고 싶었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내가 화롯불이 되기를 원했다
밤낮으로 그분들은 내 귀에 속삭였다
때로는 애원조로 때로는 협박조로
화롯불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집안에 필요한 불인지
비겁한 나는 결국 화롯불이 되었다
방 한가운데 놓여 누군가 피워 주면 피어나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랑받는 화롯불
Amor fati
Amor fati
내 청춘의 꿈은 아직도 구름처럼 허공에 달려 있다.
황야의 늑대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늑대’를 처음 읽은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바로 이게 내가 원하는 인간이야,’라고 나는 책을 읽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리의 영혼 속에 ‘시민’이라는 자아와 ‘늑대’라는 자아가 같이 살고 있었듯 내 속에도 그 비슷한 두 영혼이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착한 아들 착한 학생이 되어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억눌러놓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내가 참 나(眞我)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분명 미망(迷妄)이었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품과 선생님들의 사랑 속에 자라났기에 스스로 그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면서 그 고정 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불합격,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스스로도 부모님도 또 주변의 아무도 내가 입시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실패했고 다니고 싶지 않은 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변했다.
학교엔 나갔지만 교실에 앉아있는 것은 내가 아닌 나의 껍질뿐이었다. 공부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틈만 나면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를 한 뒤 학교를 빠져나가 거리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이 헤세의 ‘황야의 늑대’였고, 책 속에서 만난 ‘하리 할러’는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하리’는 50세의 여유 있는 자유인이었고 나는 많은 제약 아래 있는 아직도 어린 소년이었지만 영혼만은 그분처럼 자유로우니 일찌감치 참된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착한 아들 착한 학생으로 살아온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내 주변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꼭두각시 노릇이었으니 그만두고 참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때 내 마음엔 ‘황야의 늑대’라는 말이 너무 멋졌고 그렇기에 내 안에 분명 이제껏 억눌려 있던 야성(野性), 즉 늑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학교 공부는 멀리했지만 나는 결코 불량 학생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늑대는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거나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양아치 늑대가 아니었고 그 언젠가 내가 떠나온 황야를 찾아가기 위해 방황하는 ‘하리 할러’와 같은 순수한 늑대였다. ‘황야의 늑대’를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가 좋아졌지만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그의 생애였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헤세는 14세 때인 1891년 명문 신학교이자 수도원인 ‘마울브론 기숙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듬해에 신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신학교가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시인이 되거나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에서 튀어나온 뒤 잠깐 방황하던 헤세는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삶을 찾았다. 그의 첫 시집이 나온 것은 1899년이었고 그는 시인이 되었다.
헤세가 학업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헤세만큼 용기가 없었던 나는 부모님이 무서워 학교는 때려치우지 못했지만 공부는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학교 도서관에 파묻혔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교과서가 아니었고 소설을 비롯한 문학 서적들이었다.
2학년 1학기 수업이 끝났을 때 내 성적표는 비참하였다. 성적표를 받아 보신 아버지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런 일은 우리 집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라고 피를 토하듯 말씀하신 뒤 성적표를 내던지고 아버지께서 방문을 박차고 나가셨다.
뒤이어 방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눈물과 애원으로 나를 붙들었다. “다시 생각해라, 얘야. 네가 이런 애가 아니었잖니? 내 아들아, 이젠 정신 차리고 에미한테 돌아오렴.” 억지로 어머니를 떼어놓고 나는 성적표를 꾸겨 쥔 채 방을 튀어나왔다.
방황하는 하룻강아지
그 뒤 6개월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는 아마도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든 방황이었을 것이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교실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가만 앉아있으면 노여움으로 손이 떨리시던 아버지의 얼굴에 겹쳐 눈물로 내 손을 부여잡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한 해가 끝나가던 그해 겨울은 유독 춥고 밤은 길었다. 12월의 마지막 밤 내 방에 오신 어머님의 말씀에 나는 결국 무너졌다. “우선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가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은 그때부터 해도 결코 늦지 않다. 아버지 생각도 해드려라. 네 아버지 너 때문에 속병이 다 나셨다.”
어머님이 나가신 뒤 나는 오랜만에 책상으로 돌아왔다. 황야의 늑대를 동경하던 하룻강아지는 황야로 가는 길목에도 접어들지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 년 후 나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입학한 뒤 몇 달 동안은 나도 즐거운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교복과 교모를 벗어버린 것이 기뻤고 담배를 멋지게 꼬나물고 교정을 어정거려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정에 마로니에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 되자 나는 다시 내게 묻고 있었다.
‘이것이 네가 원하는 황야의 늑대의 삶이냐?’ ‘기껏 대학생이 된 것이 참 너(眞我)를 찾은 것이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긍정의 대답을 마련하려 애를 써도 돌아오는 대답은 끝내 부정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는 홍역 같은 들뜸도 자유인이 되었다는 홀가분한 기쁨도 오히려 역으로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너는 다시 너를 위한 삶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어.’라는 속삭임이 자나 깨나 귓가를 맴돌았다. 결국 2학년이 되며 나는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리고 강의실 대신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칩거하며 책 속에 파묻혔다.
하이데거를 만난 것은 그때였다. ‘시간과 존재’를 읽으면서 헤세의 황야의 늑대와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를 본질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같은 존재의 양상이라고 내 마음속에서 결론지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대학에 들어왔다고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나의 삶이 아니고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꽉 채우고 떠돌았다.
‘너는 누구냐?’ 아니면 ‘나는 과연 나인가’라는 대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종일 멍하니 도서관에 앉아있다가 어두워지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엔 불현듯 학교 대신 서울역으로 가서 아무 기차나 타고 이곳저곳을 며칠씩 돌아다니다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거의 지나가던 어느 날, 나는 다시 부모님께 부름을 받았고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내가 휴학계를 내고 수업에 안 들어간다는 사실이 발각 났던 것이었다. 부모님의 꾸중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지난번 고등학교 때의 꾸중은 실망스러운 아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바로잡기 위한 질타였다면 이번에는 자식으로부터 배신당한 부모의 처절함이 배어 나오는 처연한 꾸중이었다.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수없이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제대로 된 화롯불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부모님 슬하에 있는 동안은 부모님을 슬프게 만들지 말자. 나 스스로 독립한 뒤에 황야의 늑대가 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초라한 변명이었다. 학교를 졸업했고 사병보다는 장교가 좋다는 부모님 말씀대로 장교가 되어 군 복무를 마쳤다. 내 청춘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결혼도 했고 사업도 했고 그런대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나는 때때로 목을 돌려 ‘황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름달을 보고 때때로 서럽게 짖는 늑대는 되었어도 한 번도 제대로 그 황야를 향해 달려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왔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나의 삶은 비겁한 삶이었다. 황야의 늑대는 못되어도 어느 시인(詩人)의 말대로 ‘시적(詩的)으로 사는 삶’이라도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지금도 이따금 ‘황야의 늑대’를 꿈꾸고 들판에 타오르는 들불을 선망하는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사람들에게 작은 따스함이라도 전해주는 화롯불이라도 제대로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