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클리닉은 큐티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궁금증, 혹은 좀더 풍성한 묵상을 돕는 원포인트 레슨이다.
성경은 어렵기만 한 책이 아니라 열려 있는 책이다. 큐티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큐티가 어려운 이유가 성경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수 천년의 시간적 간극도 있고, 문화의 차이와 언어적인 한계도 있다. 과연 성경은 어렵기만 한 책일까? 필자는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의 기본적인 언어를 배운 사람이다. 큐티도 40년을 넘게 해오고 있다. 필자에게는 성경이 쉬울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어렵기도 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를 보여주시고, 그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맘씨 고약한 분도 아니신 데, 성경을 어렵고 난해한 말씀으로 주셨을 리가 없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된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장 쉽게 사용하던 언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해 주셨다.
큐티는 묵상이 아니라 묵종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는 목적이다.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성경은 열린 책이 되기도 하고 어려운 책이 되기도 한다. 성경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에게만 주신 책이 아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중세 암흑기에는 성경은 사제들과 신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다. ‘오직 성경으로’를 외치며 일어난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을 자기 나라의 말로 번역해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돌려주었다. 성경을 해석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읽으면 참으로 어렵다. 평생을 연구하고 해석해도 결코 성경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을 대하는 목적을 바꾸면 성경은 열리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성경이 어렵지 않다. 즉, 순종을 위해 읽으면 성경이 우리 눈앞에서 열리게 된다. 베드로 사도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지만,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다. 성경은 연구나 해석의 대상이 아니고 순종을 위한 책이다.
왜 큐티를 하는가?
큐티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본문을 완벽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성구 사전도 옆에 놓고, 주석도 참고한다. 결국 하다가 지쳐 큐티를 그만 두게 된다. 순종을 위한 큐티를 해보자. ‘묵상에서 묵종’으로 생각을 바꾸어 보자. 성경을 읽는 자세만 바꾸어도 성경이 내 눈 앞에서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 다루겠지만, 큐티는 내가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삶을 해석해 주는 것이다. 해석하려 하지 말고 순종하려 해보자. 큐티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큐티는 쉽게 해야 오래 한다.
고 옥한흠 목사님은 제자훈련의 과정에 큐티를 비중 있게 다루셨다. 70년대 후반 큐티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 큐티가 갖는 주관적 묵상의 위험성을 보완하고자 D형 큐티를 개발해서 가르쳤다. ‘관찰’과 ‘연구와 묵상’, ‘느낀 점’과 ‘결단과 적용’이라는 네 단계의 과정을 통해 큐티의 주관적 위험성을 줄이려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D형 큐티를 어려워한다. 훈련 중에 큐티 과제가 있는데 사전과 주석을 붙잡고 씨름해야 했다. 그렇게 큐티를 배우고 나니 큐티를 잘하게 되었지만 지속적인 큐티를 통해 묵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필자는 제자훈련을 할 때나 큐티 세미나를 할 때 큐티를 쉽게하라고 가르친다. 매일 큐티 책을 펼치기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시간이 없으면 본문을 훑듯이 한번 읽기만 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는 D형 큐티를 하게끔 지도했다.
쉬운 큐티가 오래 간다
큐티가 어렵다는 선입견이 많다. 결코 그렇지 않다. 큐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그 분과 교제하는 시간이다. 그분에게서 듣는 시간이고,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설교 준비를 큐티로 시작한다. 성도들에게 들려줄 말씀을 준비하기에 앞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고 기도하면서 설교를 준비한다. 어떤 날은 본문을 여러 번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면, 나에게 적용하고 순종하려는 마음 없이 본문을 읽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펜을 놓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한 후 다시 본문을 읽으면 신기하게 본문이 열린다. 순종하면 성경이 열린다.
오래 전 큐티선교회의 총무로 섬기던 시절의 경험이다. 예레미야 애가 3장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팍 꽂혔다.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누리고 살자고 결단했고, 말씀에 대한 적용으로 10여년을 모아온 설교자료, 교육자료, 행정자료 등을 삭제해 버렸다.
너무 과감한 순종을 하고 나니 곧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신기한 것은 그 다음 아침부터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매일 아침 부어 주시는데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 큐티를 하려고 본문을 펼치면 성경의 글자들이 살아서 춤추듯 펼쳐지는 것이었다. 본문을 두 번 읽을 필요가 없었다. 의미가 절로 파악이 되고 마치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묵상이 쉽고 즐거웠다.
작년 연말에 큐티에 대한 글을 연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오래 전 출판을 위해 정리해 놓았던 큐티 원고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분명히 백업을 받아 놓은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사 오면서 데스크탑은 버렸고, 메모리는 사라진 것이다. 낭패였다.
25번의 연재를 어떻게 실을 수 있을까? 자료도 없는데 무엇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지만 매일 아침 새로운 은혜주실 하나님을 믿고 가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부족한 글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첫 번째 글을 마무리한다.